2006년 12월 30일
근동 문제에 관한 프러시아, 오스트리아의 시각
근동 문제에 대한 프러시아, 오스트리아의 시각은 메테르니히부터 시작하여 비스마르크에 이르기까지 비슷한 면을 보였다. 메테르니히는 근동(오스만제국 아래의 중동, 이집트, 발칸등)은 문명권밖의 문제라 하여 빈 체제에서 논의조차 꺼렸으며, 비스마르크 역시 한낱 새뼈만도 못한 곳이라고 지칭하며 근동 문제에 무관심했다.
이러한 경향이 바뀌게 된 것은 오스트리아가 이탈리아 통일로 베네치아-롬바르디아를 상실하고, 프러시아와의 전쟁의 패배의 결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왕국 체제로 모습을 바꾼뒤의 일이다. 오스트리아는 이탈리아에 대한 영향력을 잃게 되었고, 독일 연방에 가지고 있었던 오스트리아의 헤게모니도 상실되자,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는 데, 그 대상이 된 곳이 바로 발칸 반도였다.
이는 곧 이전부터 발칸에 대해 이해관계(슬라브민족, 정교회)를 가지고 있었던 러시아와의 마찰을 필연적으로 불러왔고, 프러시아는 양국 모두를 제어해야 했지만, 결국엔 오스트리아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스스로 삼제동맹을 허물어 뜨리게 된 것이다.
물론 이는 빌헬름 2세가 새로운 카이저로 취임하게 되면서(1888) 노골적으로 해외 팽창 정책을 제기하는 것과 병행적으로 이루어졌는 데, 이로써 비스마르크가 보불전쟁 승리 이후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을 파괴해 버리는 행위(그가 황제에 취임하면서 비스마르크는 파면되었다)였고, 독일이 결국 영국-프랑스-러시아의 삼국협상과 맞서 싸워야 하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작년 6월 외교사 기말 고사를 준비하면서 끄적거린 소문을 다시 옮겨 봤습니다. 1년이 훨씬 지난 지금 저 때 했던 공부했던 원칙들마저 잊고 있다는 데서 서글픈 심정입니다..
이러한 경향이 바뀌게 된 것은 오스트리아가 이탈리아 통일로 베네치아-롬바르디아를 상실하고, 프러시아와의 전쟁의 패배의 결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왕국 체제로 모습을 바꾼뒤의 일이다. 오스트리아는 이탈리아에 대한 영향력을 잃게 되었고, 독일 연방에 가지고 있었던 오스트리아의 헤게모니도 상실되자,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는 데, 그 대상이 된 곳이 바로 발칸 반도였다.
이는 곧 이전부터 발칸에 대해 이해관계(슬라브민족, 정교회)를 가지고 있었던 러시아와의 마찰을 필연적으로 불러왔고, 프러시아는 양국 모두를 제어해야 했지만, 결국엔 오스트리아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스스로 삼제동맹을 허물어 뜨리게 된 것이다.
물론 이는 빌헬름 2세가 새로운 카이저로 취임하게 되면서(1888) 노골적으로 해외 팽창 정책을 제기하는 것과 병행적으로 이루어졌는 데, 이로써 비스마르크가 보불전쟁 승리 이후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을 파괴해 버리는 행위(그가 황제에 취임하면서 비스마르크는 파면되었다)였고, 독일이 결국 영국-프랑스-러시아의 삼국협상과 맞서 싸워야 하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작년 6월 외교사 기말 고사를 준비하면서 끄적거린 소문을 다시 옮겨 봤습니다. 1년이 훨씬 지난 지금 저 때 했던 공부했던 원칙들마저 잊고 있다는 데서 서글픈 심정입니다..
# by | 2006/12/30 04:38 | 역사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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