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5월 23일
한국적 국제정치이론의 모색 : 해방기 정치지도자들의 대외인식과 외교논쟁 사례를 바탕으로 한...

"한반도와 같은 지정학적 위상을 갖는 약소국들의 경우, 외세의 영향력을 부인하는 배타적 민족자결주의는 현실을 외면한 공허한 이상주의에 빠지기 쉽다. 즉, 한반도문제와 같은 약소국문제는 국제적 조정 혹은 중재가 오히려 객관성 있는 해결을 가져다줄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나친 민족주의는 외세의 건설적인 역할도 배격할 소지가 많다는 것이다."
- p190, 한국적 국제 정치 이론의 모색
(1차 인용 : p73, 한국 외교의 기본문제 - 냉전시대의 극복-, 이호재)
이 책을 읽은 건 작년 봄학기 지금 생각하면 너무 여유로웠던 시절 정치외교학과의 전공수업인 "국제정치이론" 강의를 들으면서 강의를 맡으셨던 엄상윤 교수님에 의한 것이었다. 당시 수강신청을 하고 처음 들어간 강의실에서 절대 강의가 호락호락 하지 않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으시며 강의를 따라올 자신이 없거나 단순히 학점만을 바라고 수강하려는 학생이 있다면 지금 당장 수강신청을 취소할 것을 권유(?)하셨던 교수님은 이후 한 학기동안 잊을 수 없는 기억을 선사해주셨다. 엄상윤 교수님에 대한 개인적인 추억담을 쓰기엔 이 포스팅의 주제와는 약간은 어긋나니 추억의 회상은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하자.
이 책은 사실 엄상윤 교수님이 사사받으신 이호재 학파(학파라고 하는 게 올바른 지칭인지는 이쪽 관계에 정통하지 못하여 더 적확한 표현을 찾기어렵기 때문에 혹시 이에 대해 아시는 분을 코멘트를 해주시면 감사하겠다)의 지향점이라고 할 수 있는 정치학적 현실주의를 뚜렷히 보여주는 연구서이다. 엄교수님 이외에도 5분의 공동 집필진 중 이호재 교수가 있을 뿐 아니라 연구의 목적자체가 현실주의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이 연구서를 접하는 사람 역시 그 점을 고려해야 할것이다.
머릿말에서 밝히는 것처럼 한반도의 분단이 국제정치생태의 산물임을 잘 인식하면서도 분단과 통일연구가 이론화, 개념화등의 국제정치학적 작업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에 대한 저자들은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문제를 접근하고 있다. 실제로 연구의 목적은 한반도 문제를 해결할 한민족의 정치외교력 신장책을 모색하는 데 있다고 밝히고 있으며, 그런 인식은 책제목을 “한국적 국제정치이론의 모색”이라고 명명한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저자들은 연구의 한계를 인정하고 있지만, 이 연구의 시도자체는 매우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한국의 대북화해협력정책의 표류원인에 대하여 지도자의 정치력 부족, 적절한 정책개발의 부재, 그리고 국제 권력정치에 대한 몰이해 등 지금까지 강조된 민족의 내부 조건뿐만 아니라 김정일정권의 대남경계심과 수세 전략 그리고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상충과 현상유지정책등 외부적 조건들이 우리 민족의 정치외교력 신장을 크게 제약한'다라고 주장하는 저자들의 사고는 본질적으로 기존의 외세책임론, 내세책임론을 주장하던 냉전적 정치 세력의 주장을 논박하는 기본 토대가 되고 있다. 이를 위해 이 연구에서는 분단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해방 전후의 시기에 난립한 정치 세력들에 대한 분석을 연구의 뼈대로 삼아 이런 각 정치세력의 '정책'과 외세(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과 아메리카 합중국)의 개입을 탐구하고 있다.
세부 고찰에 들어가서 연구를 들여다 보면 해방기를 몇 단계로 나누어놓고, 각 단계의 시기에 주도적인 정치세력이 어떻게 주도권을 잡았는 지 어떻게 몰락해 갔는 지, 그들이 어떻게 통일 국가 건설이라는 '호기'를 상실하게 되었는 지에 대한 역사적 근거에 대한 꼼꼼한 기술을 놓치지 않고 있다. 앞서 5가지 유형으로 분류한 정치 세력중 일부는 시기에 따라 그 유형이 변하는 경우도 보임을 밝히고 있는 데, 그것은 당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던 합중국과 연방의 양극 체제가 이완기에서 경직기로 이행함에 따라 일부 정치 세력에게 선택을 강요함에 따른 것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해방기 극우와 극좌에 대한 평가를 함에 있어서 "정치세력만 달리 할 뿐 논리적 근거는 전혀 차이가 없"음을 당시 정치 세력들이 표방하던 정책들간의 비교,대조, 정치세력을 대표하는 인물들의 발언에 주목하여 증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저자들은 해방기의 중후반부에 이르러 자유, 공산이라는 이데올로기 축과 외세의존-내세배격-과 내세의존-외세배격-이라는 두 축을 잣대로 구분된5가지 유형의 정치세력이 세 정치세력으로 재편되었음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근근이 명맥을 이어오던 연방과 합중국의 협조정책이 한반도 문제의 유엔 이관과 함께 한반도 문제 점차 세계 정치의 양극 체제내에서 대결적 구도의 충돌장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급속히 파괴되었으며, 이는 한민족의 노력만으로는 이처럼 강해진 외적 구속력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욱 희박해 졌음을 밝히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세 정치 세력중 양 극단에 서 있던 두 정치 세력은 각자 합중국과 연방에 편향적으로 치우친 채 국제 정치 환경의 변화에 힘입어 더욱 득세하게 되고 최종적인 분단을 결정짓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을 보인다. 논의를 더 나아가 해방기 막바지의 정치적 사건들에 대한 저자들의 평가는 기존의 시각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는 연구의 머리말에서 밝힌 바 한반도 국제 정치 이론의 모색에 대한 시도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에서 저자들은 지금까지 서구 국제정치이론의 수용과 무비판적 적용이 한국 사례의 설명과 한국의 국가이익 추구 양면에서 적지 않은 문제점을 보이고 있음을 주장한다. 특히 현재 한반도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인 분단을 설명함에서 한국적인 국제 정치 이론의 부재는 한국 민족 자체의 요구와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리고 연구의 목표를 한국적 국제 정치 이론의 개발로 정한 이상 몇가지 고려 사항을 염두에 두었는 데 "한반도의 분단과 통일문제를 단일변수로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었을 뿐 아니라 단일변수를 기준으로 도출되는 2개의 대외인식,외교노선의 유형만으로는 한국적 국제정치현상, 즉 한국의 정치현실에서 실존하는 유형들의 특징과 차이점을 제대로 규명하기 어렵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와 더불어 본 연구의 한계점으로 저자들 스스로 1차적 목표를 "원자료의 발굴, 보관,정리문제의 해결","자료해석의 문제", 한국적 국제정치이론 개발이 본질적으로 "소중범위 이론개발과 사례연구의 축적"로 설정한 이상 연구의 태생적인 한계였음을 드러낸다.
결국 저자들은 해방기를 "잊혀진 역사"로 치부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해방기의 경험이 한국 민족의 요구를 대변할 한국적 국제정치이론개발의 중요한 단초를 제공해 주는 이상, 직접적으로 한국 정치 현실상에서 해결해야할 분단 극복과 통일 외교의 방향을 결정짓는 데 시사점들을 해방기에서 교훈으로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상 살펴본 것과 같이 이 연구서는 상당히 딱딱하고 고루한 주제인 해방기의 정치세력들의 행태를 논의의 주제로 끌어올려 해방기가 "화석화"된 역사가 아니라 여전히 우리에게 의미 있는 역사임을 주장하고 있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각 정치 세력들에 대한 현재의 대중적인 오해 역시 이 연구서는 사료들의 검토를 통해 논파하고 있으며. 그 예로서 김구등이 남북 협상에 대해 어떤 기대를 가지고 임했는 지, 왜 5.10 총선에 김구를 비롯한 중간파 민족주의자들이 참여하지 않았는 지를 현실적 요소에 따른 결과로서 설명하고 있다. 물론 전반적으로 이 연구에서의 지향 대상이 어느 쪽인지를 인지하고 그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나 현실주의적 시각에 따른 당시 정치세력의 평가는 충분히 신뢰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적 국제 정치 이론의 개발"이라는 연구의 목적은 저자들의 밝힌 한계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성과를 거뒀음을 알 수 있다. 저자들은 본 연구를 진행하면서 국제 정치학의 토착화 가능성을 발견했으며 이는 차후 분단 상황의 설명을 위한 중소범위 이론을 넘어 보편적인 사례를 검증가능한 일반이론개발이라는 더 큰 목표를 향하는 데 디딤돌이 될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후기: 개인적으로 책장을 넘겨가면서 즐거웠던 기억이 남았던 연구서다. 특히 기존의 관념에 배치되는 논증을 마주칠 때면 당황함과 동시에 놀라움을 느끼기도 하고, 각 정치세력의 행동을 보면서 무릎을 칠 때도 씁쓸한 웃음만을 짓게 될 때도 있었기 때문에 시간을 투자해 메모하면서 읽은 가치가 있었다.
첨부: 혹시나 이글을 네이버에서 찾아서 들어오신 분 중에서 엄상윤 교수님 과제에 이글을 써먹을 생각이라면 애초에 포기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같은 책을 두번 서평과제로 내시지도 않겠지만, 내신다고 하더라도 교수님의 성격과 평소의 공언을 미루어 볼 때 예전 같은 과제물과 철저히 비교 검증을 하시니 말이다. 교수님의 공정함은 수업을 듣는 학우라면 누구나 다 체감할 테지만, 한 순간의 유혹에 빠져 성적표를 보고 후회하는 일은 없기를.
# by | 2007/05/23 01:54 | 책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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