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과 최만리 그들은 어떻게 달랐나? 역사

세상이 그리 만만하더냐?
한글 창제, 최만리 창제 협력설은 어떻게 나왔는 가? 

  우선 세종과 최만리 모두 조선 시대의 인물로서, 명이라는 상국에 사대하는 것이 조선의 기본입장이라는 것이라고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사대주의"를 표방했다는 점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애초에 제가 파파울프님의 글에 생각이 다르다고 한 것은 한글창제에는 전혀 공이 없는 최만리가 "발음기호 제작을 하라는 세종의 명을 받아 이를 수행"하여 "즉 훈민정음은 사실 최만리외 집현전 학자들의 연구결과라는 것"과 한글창제의 목적이 "바로 우리가 쓰는 한자 모두를 중국 본토발음에 똑같이 쓰도록 하기 위한 사전 작업이었"다고 쓰신 것입니다.

  첫번째에 관한 것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 1999년, KBS에서 한글날 특집 다큐멘터리를 다루면서 기존의 이론(異論)들에 대한 논박을 하였으며 또한 이는 학계에서 정리가 끝난 것으로 알고 있었는 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한글 창제가 세종의 개인적인 창조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에 놀랐습니다.
   문자 체계가 새로 만들어지면 많은 테스트가 필요하지만 그걸 맡은 것은 적어도 최만리등의 기존 집현전 학자들은 아닙니다. 어느 기록에도 최만리를 비롯한 집현전의 노학자들이 그걸 수행했다고 밝히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세종의 명을 받은 옹주들과 왕자-특히 아버지 못지 않게 학문에 밝았던 문종과 이후 세조가 되는 수양대군이 역할이 크다는 점은 어느 정도 사료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들의 몫이었던 것이죠. 그렇다고해서 옹주와 왕자들을 한글의 공동 창제자로 볼 수 없는 것은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자세히 밝히고 있는 것처럼 문자 체계는 음운학에 정통한 세종의 독자적인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단순히 언문을 테스트(!)한 작업을 공동 창제라고 하기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최만리등의 상소 시기에 대해서는 그들은 전혀 한글 창제에 대해 모르고 있다가 창제가 공식화 된 후 이에 대해 반발을 할만한 계기를 찾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옳은 듯 싶습니다. 훈민정음을 창제했다는 것은 실록에서도 짧막한 기사로 쓸 정도로 당시 사관조차 중요하게 언급하지 않았기에 그들도 그다지 중요한 것으로 인식하지 않았거나 혹은 한자의 대체재라고까지 생각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상소문에서는 언문의 사용이 결국엔 한자 사용자체를 없애버릴 것이라고 우려하는 데에서 그들은 '언문'의 주요 문자 체계로서의 사용에 대해 극히 거부감을 보입니다. 이는 정음청이 설치되고 집현전 일부학자들이 동원되어 운회의 번역을 시작하게 되자, 언문의 창제가 단순히 학문을 좋아하는 군왕의 '취미생활'이 아니라(세종은 상소에 대한 답에서 한글 창제가 매사냥과 같이 백성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 자신의 소소한 취미거리였음을 밝힙니다) 본격적인 대체 문자 체계로 쓰일 것을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그들은 발음 체계를 바로 잡는 것은 이두로 충분하다고 하여 한글창제의 목적을 발음 문제로 무마하려는 세종의 답을 반박합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동국정운은 '언문'을 문자 체계로 확실하게 자리잡기 위한 언어의 탄생상 당연한 순서이지 세종이 발음의 중국화를 집착했다는 증거는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동국정운’이란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의 바른 음이라는 뜻으로, 효과적인 발음기호가 없는 이상 작은 나라에서도 발음을 배우는 데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을 하나로 정리하기 위함인 것이죠. 이렇게 되자 최만리에게는 이미 발음의 중국화 따위는 관심대상조차 되지 못합니다. 이두로서 충분한 것을 군왕이 억지로 만드는 것은 스스로 오랑캐가 되는 것뿐이라고 극도의 반감을 보이는 것이죠.


   두번째에 관해서는 적어도 공식적인 사료로는 그러한 추측을 할만한 근거를 찾을 수 없습니다. 실제 한글창제에 대한 세종대왕의 의도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것이죠. 위에서 쓴 것처럼 최만리는 한글 창제로 인해 기존의 발음 체계를 정비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라고 봤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문자을 만들어 사용하는 것은 스스로 중화에서 벗어난 오랑캐의 위치로 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들은 분명한 거부감을 보입니다.
   그러나 세종은 표면적인 이유였던 발음의 정비라는 명분으로 최만리등이 설득되지 않자 한글 창제에 대한 본래의 의중을 드러냅니다. 유교적 이상에 의해 바람직한 국가를 경영하는 것이 한글 창제의 목적이었다는 것을 은연중에 밝히고 있는 것이죠. ("내가 만일 언문으로 삼강행실(三綱行實)을 번역하여 민간에 반포하면 어리석은 남녀가 모두 쉽게 깨달아서 충신·효자·열녀가 반드시 무리로 나올 것이다.” 세종실록 26년, 최만리 상소문 기사) 정창손이 유일하게 파직된 것도 세종의 이런 사상을 부정하여, 문자를 새로 창제하는 것이 유학적 국가 경영에 도움이 되지 않는 다고 반박했기 때문이라고 저는 추정하고 있습니다. 파파울프님께서 세종이 유학의 기반에서 유학적 국가관을 수립하기 위한 것들이 많다고 하시는 데, 역시 위에서 썼다시피 저도 이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유학을 통치자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 유학의 근본적인 목적은 유교적 이상사회를 구현함이지 중국에 동일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세종의 입장에서는 유교화=중국화가 아니라는 말이죠.  그 어떤 사료에서도 세종이 발음의 중국본토화와 같은 지엽적인 문제에 집착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에게 큰 문제는 유교를 사회에 뿌리 박기 위해 새로이 문자를 창제함으로서 한문을 모르는 백성들을 유학적인 사회로 인도하기 위함이었던 것이죠. 게다가 당시 조선은 건국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고, 명초와는 달리 급격한 확장주의 정책을 전면에 내세운 영락제의 치세가 오래전일이 아니었기에, 최만리의 "오랑캐" 운운은 충분히 정권의 정통성을 뒤흔들 만한 일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세종은 자신의 창제물인 '언문'이 신하에게 오랑캐가 되는 도구라고 모욕당하는 입장이 되어서도 최만리등을 강력하게 처벌할 수 없었습니다. 세종이 최만리를 크게 벌 주었다면 이는 처벌을 받은 최만리의 입지를 강화시키고 군왕이 국가를 중화의 도에서 벗어나게 한다고 하여 아직은 안전하지 않은 조선의 입지를 크게 약화시킬 수 있는 사건이 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영락제 치세 당시 과거 쿠빌라이의 일본 침공때처럼 영락제가 몽골 정벌을 끝내고 조선을 통해 일본에 침공하려고 하는 게 아닌 가 하는 불안이 조선조정에 감돌고 있었습니다. 이런 영락제의 치세가 끝난지 얼마 안된 시기에 명의 제후국인 조선에서 임금이 새로이 "문자"를 만들어 내어 사용을 하라고 한 것은 고작 조선의 한자어 발음의 본토화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명나라에게 조선이 심상치 않은 감정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오해될 수도 있었던 사건이지요.

   이상의 최만리와 세종의 사고 차이는 너무나도 극심했습니다. 단지 두 사람이 기본적으로 유학적인 사상의 기틀속에서 시대를 살아갔지만, 한 사람은 통치자로서 유학을 통치이념으로 사용하고자 했고, 다른 한 사람은 오히려 그런 군왕의 도를 이해하지 않는 일개 선비로서 군왕의 방침을 오랑캐화 운운하는 식의 반감을 보인 것입니다.

   역사는 숨지 않습니다만, 후세인들의 사고에 의해 가려질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저 상소로 인해 세종이 자신의 이상을 접어두었다면 지금 아직도 우리는 한문으로 문자 체계를 사용하거나, 개선된 이두로 일본문자와 비슷한 형태의 글자를 사용하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세종의 사대주의를 비난하지 못함은 그의 의도가 유학적으로 백성을 좀 더 나은 이상적 사회로 인도하기 위함에 있었기 때문이고, 최만리의 사대주의를 비난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의도가 단지 좁은 사고틀에 박혀 진정으로 무엇이 백성을 위함인지 알 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세종과 최만리를 똑같은 사대주의자로 봐야하는 것일까요? 적어도 당대의 시대로 돌아가 봐도 이 두 사람의 사고의 차이는 현대 대한민국의 "보수"와 "진보"와의 차이에 비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대 한국에서도 일부를 제외하면 조선시대의 어느 누구도 유교이념을 정치이념으로 부정하지 않았던 것처럼, 서구민주주의를 이 사회의 이념으로서 거부하지 않고 있는 것이죠.

덧. 세종이외에도 독자적으로 문자를 만들어 낸이로는 최만리의 상소에서도 보이는 "설총"-물론 현재는 믿기 어렵다고 합니다만, 조선시대 당대에서는 이두를 설총의 개인적인 저작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과, 아예 새로운 언어 체계인 에스페란토어를 만들어낸 폴란드의 자멘호프등이 있습니다. 언어란 쉽게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실제로 뛰어난 능력을 가진 개인으로도 충분히 만들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세종이 과연 국왕이 아니고 일반 학자로서 "훈민정음"을 만들어 냈다면 이토록 그의 창조를 의심했을 까요? 이제는 신숙주, 성삼문뿐만 아니라 한글 창제의 가장 큰 적이었던 최만리조차 "한글"창제의 공동협력자가 되는 것이 너무나도 슬퍼집니다. 

핑백

  • The Cubic Area of A.Kitchener : 한글날 입니다. 2008-10-09 00:39:58 #

    ... 으로 대체 합니다. 세종과 최만리의 유명한 논쟁에 대하여 한글 창제, 최만리 창제 협력설은 어떻게 나왔는 가? 세종과 최만리 그들은 어떻게 달랐나? ... more

덧글

  • 2007/06/08 10:36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제절초 2007/06/08 11:21 #

    잘 읽었습니다. 아 역시 역사는 어려워요=ㅅ=;;; 팩트는 있어도 어느게 진실인지는 모르니;;;
  • superbass 2007/06/08 11:28 #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 pmpnp 2007/06/08 11:35 #

    트랙백해 갑니다 ^-^
    좋은 글 잘 읽고 가요~
  • 키치너 2007/06/08 12:13 #

    익명/ 사실 지금 정론은 세종대왕 친제이지만, 이론(異論)을 제시하는 분들도 꽤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론(異論)들이 사료에 근거하지도 않고 막연한 추측과 사실 왜곡을 하고 있으니 아직까진 세종대왕 친제가 실제 역사에 가장 부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제절초/ 그렇죠. 동시대에 살아도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닌데, 후대인이라면 어떻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역사를 접근함에 있어서는 최대한 당시의 상황을 논리적으로 밟을 수 있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팩트와 팩트를 연결해 가다 보면 무언가 고리가 보이고 그 고리를 이어주는 것이 역사를 접근하는 후세들의 일이겠지요.
    superbass, pmpnp / 하핫. 졸문일 뿐인데 좋게 봐주시니 감사할 뿐입니다.
  • 초록불 2007/06/08 12:25 #

    좋은 글입니다. 잘 보았습니다.
  • 구루미 2007/06/08 13:19 #

    세종대왕이 직접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전에 읽어봤지만 키치너님 글 덕분에 최만리와 세종대왕의 훈민정음을 둘러싼 관계를 보다 더 잘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 너구리 2007/06/08 18:51 #

    저도 예전이 비슷한 의심을 했던 적이 있었지요. 어릴때부터 한글은 세종대왕이 창조했다는 것을 마르고 닳도록 배워왔는데, 왕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직접 나서서 문자 창조 프로젝트를 주도했다는 것보다는, 집현전 학자들을 후원하고 독려하는 수준에서 프로젝트 매니저 정도의 역할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훈민정음 서문을 다시 읽어보고 국문학 전공했던 친구에게 물어봤었드랬습니다. 서문에는 어리석은 백성을 긍휼히 여겨 직접 스물여덟자를 만들었다고 써있지요. 그런데 왕이라는 위치에 가려서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점이 세종대왕이 당대 최고의 언어학자이기도 했다는 사실이더라구요. 우리에게 세종대왕은 훌륭한 임금으로만 너무 잘 알려졌기 때문에 그런 의심이 생기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훌륭한 학자로서의 면모를 본다면, 이런 의심은 생기지 않을테지요.
  • 달빛으로쓴시 2007/06/08 20:18 #

    아, 멋진 논쟁 과정 잘 봤습니다. 살짝 트랙백 해갑니다. 볼 것, 배울 것들이 많아서 링크도 해놓을게요. ;)
  • 2007/06/09 00:31 # 삭제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키치너 2007/06/09 22:27 #

    초록불/ ^^; 아는 것도 별로 없는 사람이 뭔가를 쓰려니 힘드네요.
    구루미/ 사실 최만리가 단순히 "중화 사대 만세 주의자"여서 한글 창제를 반대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지식 기득권층으로서의 initiality를 잃고 싶지 않은 것도 상당히 작용했을 것이라 생각하곤 합니다.
    너구리/ 세종대왕께서는 일반인의 상식을 넘어서는 분이라 종종 오히려 그분의 실제 업적이 가려지곤 하는 모습을 봅니다.
    달빛으로쓴시/ 링크는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
    익명/ ... 가입을 하시고 점.. (-_-), 그리고 지금 바쁘지도 않으시오? (笑), 의견을 받아들여 스킨을 교체했수이다 (...)
    악플/ 제가 아는 분이 아니었군요 ^^ 님께는 별로 관심받고 싶지 않습니다
  • 핑크로봇 2007/06/11 01:56 #

    하... 세종대왕님은 엄마친구아들 이상이군요. ;;
  • cyrus 2007/06/13 06:37 #

    도서관에서 책 보다가, 끄적거렸는데 버리기는 아깝네요. 이하 허구입니다.

    1/ 그러니까, 대통령이 목성행 우주선의 청사진을 다 그려낸 뒤, 과기부 장관과 카이스트 총장을 청와대로 불러 놓고,
    "선거유세하면서 짬짬이, 심심해서 그려봤습니다. 모의실험까지 다 끝나서 안전사고도 염려 없을 겁니다. 언제까지 발사 준비가 끝날까요?"
    ,라고 설계도를 보여주면서 말을 했다면. 두 공학자가 무슨 대답을 할 수 있을까요?

    (두 사람 서로 쳐다보며, 사무실 바깥으로 나가서 서로) "이런, 씹......! 우린 무슨 병신이야? 저 사람 뭐지? 시뮬레이션까지 다 끝났다고? 뭐라고 대답할까?"

    (다시 대통령 사무실로 들어와서) "북한이 남침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 무슨 우주선 발사입니까? 목성행은 무리입니다."

    2/ 솔직히 제가 최만리였다면, 그 자리에서 혀 깨물고 죽어버리고 싶었을 거에요. 무슨 공자, 맹자 따위가 아니라 한자를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신화 속의 창힐이 눈 앞에 있었던 걸 수도 있죠. 결국 그 '대왕'이 사람인지가 의심스럽니다. <실록>의 기록은 말이 안 되요. 말타고 절벽을 날아서 올라갔다는 <용비어천가>가 신빙성이 있습니다.

    3/ 재미없으면 안 되는데...... 어쨌거나 만원에 그려진 초상을 숭배하자는 말은, 아닙니다.
  • 키치너 2007/06/13 15:35 #

    핑크로봇 / 아마 한반도에서 정치적 결사체가 존재하는 동안 저런 분을 다시 뵙기는 힘들겁니다.

    cyrus / 그렇죠. 상식선으로는 절대 말이 안됩니다. 어떻게 한 개인이 문자 체계를 만들 수 있을까요? 이건 사깁니다.(웃음)

    그렇지만, 역사를 대하는 후대인의 입장에서 과거를 해석하는 것은 사료를 근거로 해야함이 기본입니다. 게다가 당대의 사료들이 일관되게 같은 사실을 주장하고 있다면, 당대의 역사를 해석함에 있어서 완전한 재현은 힘들지만 "사실"에 가까운 접근을 이뤄낼 수 있습니다.

    최만리는 별로 죽고 싶은 심정은 아니었을 겁니다. 최만리 자신은 음운에 관심을 둔 학자도 아니었고, 그쪽 분야의 전문가도 아니었으니까요. 많은 문헌을 교차 검증해보아도, 한글 창제에서 세종의 역할이 더욱 두드러질 뿐 다른 이들이 한글 창제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기록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기껏 있는 것이 옹주들과 왕자들이 민가의 언어등을 수집하여 "언문"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임무(?)를 맡았다고 하는 사가(私家)에 남은 기록정도 뿐이죠.

    보통 사람의 상식선에서는 불가능해 보이지만, 사실 세종 자신이 학자로서 음운학은 물론이고, 성리학에서도 최고 수준의 학문적 성취를 이뤘다는 것을 생각하면 믿을 수 없는 사실도 아닙니다.

    이 이야기는 세종을 숭배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한글 창제와는 눈꼽만큼도 관련이 없는 최만리가 한글 창제에 기여 운운 하는 이야기가 도는 세상에서 왜곡된 역사를 바로 보려는 것 뿐이지요. 사실 세종이 한글 창제를 한 게 아니라고 주장하시고 싶으시면, 반박할 수 있는 사료를 제시하시고 주장하시면 됩니다. 막연한 추론과 예상만큼 역사를 다루는 이에게 위험한 것은 없죠. 게다가 그 사실을 "증명"하는 사료가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 지를 생각해 본다면 답은 나와 있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믿기 힘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쩝니까? 믿을 수밖에 없는 데요."
  • cyrus 2007/06/14 07:47 #

    저는 사실에 대한 판단을 넘어서려고 했던거에요. 꿈이 때로는 힘을 주기도 한다고 말을 해보고 싶었던 거죠. 이상, 신념. 그러나, 음... 어떤 종류의 가치판단 형식, 믿음에 관한 적절한 반론을 찾아냈습니다. 찬물을 확 끼얹더군요. 저에게.
    노래에요, Within Temptation, <Deceiver of fools>인데, 이 노랫말은 맞는 말 같아요.
    공연,
    http://stage6.divx.com/Diva-Channel/video/1314587/[Live]-Within-Temptation---Deceiver-of-Fools
    가사,
    http://www.lyricsmania.com/lyrics/within_temptation_lyrics_3658/mother_earth_[single]_lyrics_18021/mother_earth_single_version_lyrics_20747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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