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97년, 이제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걸까? 역사

  97년 전 8월29일 밤에 한국통감 테라우치 마사다케는 가토 기요마사, 고니시 유키나가를 회상하는 시를 한 수 지었다고 한다. 한 세기 전의 그들도 과거의 역사를 회상하며 오늘의 일을 곱씹는 데,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은 과연 어떨까. 

  동서양 막론하고 집단 기억에서 "우리"에게 좋은 기억은 살아남지만, 부끄럽고 창피하고 덮어버리고 싶은 사건은 사라지지만,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잊어가고나서는 정말 우리가 옛사람들에게서 배우는 게 무엇인지. 조금은 슬퍼지는 날이다.

  "1910년 한국을 병합하던 날 밤에, 한국통감이며 육군 대장이었던 테라우치 마사다케는 “가토 기요마사, 고니시 유키나가가 살아 있다면 오늘밤 이 달을 어떻게 보았을까” 라는 시를 한 수 지었다. … 한국 병합이 공표 되자 일본의 많은 신문들은 이것을 양국의 합의에 의한 것이라며, 이를 축하하고 기념하는 특별호를 냈다. [중외상업신보]는 1면 중앙에 대문짝만 하게 한반도의 지도를 싣고, “만약 국가의 팽창, 발전을 국력 왕성의 결과라고 한다면 대 일본제국의 이러한 팽창에 대해 우리 국민이라면 누구나 온몸으로 전해지는 환희를 금할 수 없다.”라며 약 9만 평방 마일의 국토와 1,248만 4,621명의 인구를 지닌 새 영토의 획득을 축하했다. 도쿄에서는 어느 집이나 일제히 일장기가 걸리고, 이를 기념하는 꽃 전차가 시가를 질주하였다.
한편 지금까지 일본의 조선 정책을 비판하고, 조선 민중에게 동정을 보내는 주장을 폈던 사회주의자도, 5월부터 8월에 이르기까지 반역사건으로 잇따라 검거 당하는 등 사회주의자에 대한 탄압으로 인하여 합병에 대한 반대 운동을 계속하지 못하였다. 또한 조선에서는 합병을 공표하기 전에 한국 통감부에 의해 신문이 정간되고 수천 명에 이르는 민족주의자들이 검거되었다. 이렇게 합병에 대한 항의, 반대 운동은 탄압 당했다. … 병합에 따라 한국통감부는 조선 총독부로 개칭되고 총독부는 행정을 담당함과 동시에 헌병경찰기구를 정비하여 치안 유지를 도모하고 조선인의 권리와 자유를 엄격히 제한하였다. … "


                                                         ([고교 일본사] 實敎出版, 265 ~ 267쪽) (http://blog.naver.com/ltk20/130021754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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