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를 대하는 태도 잡동사니

종교와의 전쟁

  종교가 그나마 존재의 가치를 갖는 것은 그 종교가 부수적 효과를 내는 "윤리" "도덕"이라는 가치가 그 종교 신자의 정규 분포에서 mean 값에 이를 때, 부수적 효과로 얻는 사회적 이득이 종교 자체의 퇴보적, 사회적 악보다 크기 때문일 것이다. 종교가 발휘하는 사회적 질서에 대한 영향은 종교를 갖지 않을 때보다 강력한데, 이것은 종교가 본질적으로 인간의 이성적 영역이 아니라 감정적 영역을 자극해서 행동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에게는 대부분 이성과 감정이 혼성되어 있지만, 감정은 많은 경우 이성의 힘을 앞지른다. 이 것은 논리적인 주장에서도 감정적 영역을 자극하여 주장을 펴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것에서도 나타나는 데, 신경과학의 관점에서 이성과 감정의 차이를 밝힌다면 어째서 많은 인간들이 여전히 이성보다 감정에서 더욱 강력한 행동의 원동력을 얻는 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인간집단에서 이성으로 감정을 억누를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사회는 본질적으로 진보 진화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아직도 감정적인 영역에서 행동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종교의 가치는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주장은 종교에 대한 비판를 중화시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에 종교의 무가치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마음에 들지 않겠지만, 솔직히 본심을 말하면 인간 자체의 생물학적 진화가 선행되지 않는 이상 이런 "진화에서 낙오된" 사람들이 계속 출몰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혹자는 생물학적인 포인트보다 후천적 교육이라는 점이 인간 행동-개개인마다 다른 이성과 감정의 파워 -을 결정한다고 믿는 모양이지만, 그것은 여기에서 다루지 않기로 하자. ) 아무튼 이런 비진화된 인간들이 계속적으로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한, 종교를 이 사회에서 퇴출시키기 위해 강력하게 나선다면 "(사회)운동은 자체의 추진력+관성에 의존"한다는 것을 생각해볼 때,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들의 강력한 주장으로 종교가 관성을 잃게 되면 뒤떨어진 인간들이 종교의 "세례"를 얻는 것은 과거보다 힘들 것이다. 그들은 더 이상 종교라는 감정적 영역에서의 사회질서유지수단의 영향을 받지 않게 됨으로써 전체적인 사회적 편익은 감소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사고로 종교를 봐야 할것인가. 많은 선택지 가운데 현대사회의 개인주의적인 이념에 반하는 일부 종교인들의 과대망상적인 사고를 추방하는 데에 힘을 다하고 종교 자체는 아직 사회적 편익이 있다고 가정하여 놔두는 것이 종교를 대하는 태도 중 하나로 거론될 수 있다. 이것은 "종교는 악"이라는 사고보다 더 넓은 이들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고, 빠른 목표 달성에도 효과적일 것이다. 종교 자체가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이지만, 그래서 어떻다는 건가? 합리적 이성을 가지고 있다면 종교만큼 저비용 고효율로 인간 사회를 안정시키는 데 기여하는 "발명품"을 떠올리기는 힘들것이다.
   우리가 현재 종교를 비판하는 것은 종교가 가진 근본적인 성질이 우리를 불편하게 하기때문이 아니다. 우리의 종교에 대한 비판은 일부 종교인들의 과대망상적, 중세적인 멍청한 행위가 사회에 해를 끼치고 있다는 판단에서 출발한다. 사실 이들 일부 종교인들의 행동을 제지하는 데 힘을 집중하는 것이 사회 전체의 편익 증대라는 면에서 나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이 세상에는 종교를 비판하는 합리적 인간보다는 종교에 삶을 의탁하는 "비합리"적인 인간이 훨씬 많다. 이들에게 종교를 빼앗는다면, 그 세상은 종교 비판자들이 그려내는 이상적이고 합리적인 사고가 지배하는 세계가 아니라 지금보다도 훨씬 불안하고 악덕이 횡행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이런 세계가 합리적인 인간이 바라는 것인가? 그것은 아닐 것이다. 진정으로 이성에 의해 자신의 행동을 규정한다면, 종교인들에게 자유롭게 종교를 믿도록 두도록 하자. 그들은 그들의 종교에 의해 스스로 사회 안정에 기여하게 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우리"들은 그들 중 일부가 벌이는 멍청함에 개탄하기도 하겠지만 사실 그것은 매우 싼값에 불과한 것이다. 

 

  의도가 올바른 것이라고 해서 행위의 결과가 더 나은 결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