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을 노려라! 건버스터 - 감동과 폭소가 혼재하는 고전(?) 명작 애니메이션


         오랬만에 풍족한 문화 생활을 즐기고 있는 한주이기에, 평소 생각해둔 애니메이션들을 보기 시작했다.
          이른바 구 시대의 명작작품들 위주로 고르다가 선택한 것이 바로 건버스터였는 데, 사실 나는 이 작품에 상당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파일럿 슈트부터해서 로봇도 괴상하게 생겼고 그리고 톱을 노리라니 스포츠 만화 패러디인가?'
       
         (물론 톱을 노려라! 건버스터가 패러디 작품이 아닌 건 아니다. 이른바 오타쿠들이 만든 회사라고 불렸던 가이낙스가 톱을 노려라! 건버스터는 작정하고 패러디의 냄새를 물씬 풍기게 제작했다. 제목부터 시작해서("에이스를 노려라!"), 내용 곳곳에서 울트라맨, 기동전사 건담, 자이언트 로보, 심지어는 마크로스까지 기존 저패니메이션의 대작들의 패러디로 잔뜩 채워진 이 작품은 분명히 의.도.적.이다.)
    
보이는가? 린 민메이다.

이.. 이건! 키시리아 마스크!

         
        하지만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 오랬동안 잊혀지지 않고 명작으로 기억되는 작품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 톱을 노려라! 건버스터에는 시청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분명히 존재한다. 재능이 부족한 초보자가 뛰어난 트레이너를 만나 일취월장하여 실력자로 거듭나는 성장드라마는 물론이고, 후반부로 가서는 그야말로 가슴아픈 휴먼 드라마를 연출하는 이 작품은 시청자의 주인공에 대한 감정이입을 극도로 끌어올려 감동을 극대화 하고 있다. 게다가 단 6화로 끝내버리는 작품 전개는 중심적인 스토리에 집중하여 얻어낸 시원시원한 맛은 요즘 애니메이션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특징이다. (이하 작품 풀네임과 약칭:건버스터를 혼용)


키쿠치 마사노리(미술감독), 니시모토 세이지(원화담당), 사사키 히로시(미술감독), 안노 히데아키(감독), 사다모토 요시유키(원화 및 작화감독), 히로노 히로시(배경담당), 무라하마 쇼지(제작담당), 마츠하라 히데노리(원화담당)의 모습이 1화 록시온 기사에서 나온다.
(이 진성 오타쿠들!)


     
스포츠 성장 만화의 전형적인 스토리인 멋진 "선배"에 대한 동경
주인공을 라이벌로 생각하는 인물과의 대결(후일 많은 작품에서 패러디해먹는 "이나즈마"킥이 여기에서 등장)

그리고 학교를 벗어나 더 큰 "세계"에의 도전(감독님의 패러디 끼는 여기서도 발휘된다. 과연 뭘까?
 답은 저 옷이 일본 올림픽 선수 대표단 유니폼라는 것(...))
'라이벌'의 승복과 응원

   이 전형적인 스포츠 만화 모습은 이 작품이 왜 "톱을 노려라!" 인지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사실 전형적인 소년 메카물에서는 주인공이 급박스런 사태에 휘말려 우발적으로 메카에 탑승하게 되거나,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등의 비밀스런 메카 개발로 파일럿이 되거나, 그보다 더 원조격인 메카물에서는 아예 "박사"님의 지시로 어렸을 적부터 파일럿 훈련을 받는 케이스가 주류인데 반해 남자-소년 혹은 청년-이 아닌 소녀가 파일럿인데다 파일럿으로 성장하는 과정도 매우 독특한 이 작품은 그야말로 1화부터 시청자들의 정신을 잽으로 툭툭 쳐주며 존재감을 과시한다.

  
쓰레기라니?! 쓰레기라니?! 쓰레기라니?!

말도 안돼!!

         중반이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인류를 위협하는 정체의 목적에 대해서 밝히기 시작하는 이 작품은 안노 히데아키감독의 인간에 대한 냉소적인 태도을 분명히 드러낸다. 이건 6화에서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 은하계의 중심을 날려버리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이냐고 반문하고 그럴바에야 차라리 멸망을 기다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하는 젊은 장교의 입을 빌어서도 말하고 있다.
         물론 감독이 어떤 생각이 가지고 있든 지, 열혈 메카 로봇 애니메이션에서 "인류가 나쁘니 걍 닥치고 멸망하는 게 좋겠스무니다"라고 하면 아무도 보지 않을 테니 나름 멋진 말로 살아나가야 할 이유를 설명하고 있지만, "우주 괴수"들의 입장에서는 "우주의 쓰레기들"를 청소하려다 오히려 당한 셈이니 억울한 일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배경이 우주로 옮겨가도 주인공인 노리코는 한참을 '빌빌'댄다. 이른바 주인공의 2차 시련기가 다가온 것인데, 건버스터에서는 조금 독특한 방법으로 시련을 이겨내고 모두를 대 핀치! 상황에서 구해내면서 진정한 노리코의 주인공 데뷰를 그려낸다. 감정이입을 잘 하고 온 시청자들은 여기에서 드디어 속이 시원하게 풀리는 것을 느낄 것이다.
     

         이렇게 노리코의 활약으로 종영(?)의 위기를 넘긴 건버스터는 슬슬 이제 최루탄 효과를 발휘한다. 이른바 광속 여행자의 역설을 바탕으로 한 이 가슴아픈 이야기는 전반부에서 살짝씩 보여주기는 하지만 종반에 이르러서는 그야말로 사람 눈물을 빼는 역할을 단단히 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함께 시간을 공유하지 못하는 이들의 슬픔, 주위 사람들은 늙어가는 데 자기 혼자 남겨진 고독, 이후 저패니메이션에서 가끔씩 등장하는 이 테제를 건버스터는 종반부의 주제로 삼고 단순히 패러디+스포츠 성장+메카 애니에 감동이라는 양념을 뿌려 많은 이들의 기억에 선명하게 자신을 남겼던 것이다.

  덧. 자신이 나름 저패니메이션에 도가 텄다면 건버스터를 돌려보면서 어디가 패러디된 곳인지 발견해 보는 것도 소소한 재미일 듯(...)

덧글

  • 레카 2007/09/09 05:56 #

    와...패러디 많은것은 익히 알고있지만 저 초반 신문에 제작진 다 들어간것은 진정 몰랐네요...캡쳐해서보니 이름이 있네;;;
  • 키치너 2007/09/09 13:09 #

    레카 / 아무래도 이 시기의 가이낙스는 그야말로 "오타쿠회사"라는 말이 딱 들어맞으니 말이죠. 정말 유심히 살펴보면 경악할 정도로 패러디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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