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행성동맹의 정치체제는 어디에서 왔는가? - 오랜만에 은영전을 생각하면서..

   굽본좌의 "운하영웅전설" 패러디 덕에 오랜만에 은영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일단 기본적으로 은영전은 SF 탈을 쓰고 있는 대하 '정치' 소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소설내에서 묘사 되고 있는 정치 체제를 상당히 흥미롭게 보았는 데, 처음 읽었을 때부터  도대체 자유행성동맹이라는 국가의 정치는 어떤 모양새를 가지고 있는 지에 심각하게(?) 고민을 한적이 있었다.
   분명 의회는 있는 것 같은 데, 행정부에 대한 의회의 견제 같은 것은 보이지도 않고, 웬만큼 중대한 사안은 '최고평의회'에서 쓱싹 처리되어 버리니 도무지 현대 민주공화정 국가에서는 비슷한 걸 찾아볼 수 없었던 게 더 궁금증을 불러왔다고나 해야될까.
   작가인 다나카 요시키씨의 성향상 전혀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낼 것같지는 않고, 분명히 어디선가 비슷한 모델을 멋지게 차용했을 거라는 추측은 했지만, 도통 그 흔적이 보이지 않아 고심하던 차에 오늘 다시 외전 '다곤성역회전기'를 읽다가 실마리를 찾아낸 듯하다. 
   
   ".... 자유행성동맹(Free Planet) 최고 평의회 의장, 요컨대 원수로서 최고행정관인...."

   뭔가 짚이는 데가 보이지 않는 가? 그렇다. '원수' 이고 '최고행정관'.

   베네치아 공화국이다. 

   ... 거기 돌 들어올리는 분. 잠시만 설명을 듣고 그 돌의 운명을 결정지어 주시기 바랍니다. (...)

   베네치아 공화국은 종신원수제이고, 국회의원도 세습제이기 때문에 분명히 보통선거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이는 동맹의 정치체제를 단순히 베네치아 공화국의 판박이라고는 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은 당연할지 모른다.
   하지만 각 선거구-제시카 에드워즈의 의원 출마와 당선을 보면 인구에 따라 각 행성마다 몇개의 선거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에서 선출된 의원들이 구성한 의회보다 소수의 인원이 사실상의 과두정치정(최고평의회)을 이루고 있는 예에서 효율적인 정치를 위해 세습 국회 의원으로 구성된 공화국의회보다  10명의 위원과 6명의 원수 보좌관 그리고 원수 가 긴급하고 비밀을 요하는 상황에 대하여 결정을 내리는 10인 위원회 (Consiglio dei Dieci)를 가진 베네치아의 그림자를 보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사실 항시 준전시 상태였던 베네치아가 그토록 오랬동안 공화정체를 유지할 수 있었던 데는 권력의 독점을 피하면서도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정치 운용을 할 수 있었던 저런 정치체제의 면이 컸다고 할 수 있는 데, 수세기동안 제국과의 전시 상태에 있는 동맹이라는 국가에 민주공화정 모델을 씌우기 위해서는 베네치아 모델을 모사하는 것이 다나카 요시키씨에게는 가장 납득할 만한 설명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뭐, 그래도 사실 만약 대통령제의 미국이나 내각제인 영국이 수백년동안 전시 상태에 있었다고 생각해 봐도,  결국엔 저와 같은 소수인원으로 결정하게 되는 정치체제로 나아갈 수 밖에 없었을 테지만 말이다(프훗)-

덧글

  • 듀공 2007/11/25 07:34 #

    저도 운하영웅전설 덕에 은영전 생각이 많이 나더군요.
    설득력있는 가설이라 생각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 키치너 2007/11/25 17:20 #

    듀공 / 사실 유럽 중세, 근세사를 읽다보면 섬칫섬칫 놀랍니다. '아니 다나카 선생! 여기서도 모티브를 얻은 건가!'
    그리고 한동안 잊고 있었던 은영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할 기회를 갖게 된 것에 대해 굽본좌에게 다만 감사할 뿐입니다 ㅎㅎ
  • 오히긴스 2009/08/10 10:49 # 삭제

    오호~ 은영전 팬으로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글고 굽본좌 본격 2차대전... 신간도 곧 나온다더군요. ^^;
  • 키치너 2009/08/10 20:41 #

    은영전 팬이라니... 반갑습니다. 한국에선 돈 주고도 은영전을 구할 수 없는 날이 된 요즘같은 시대엔 더더욱 말이죠. :)
    = 굽시니스트님의 신간은 저 역시도 기대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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