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도화선 - 히틀러의 일차 대전의 경험 (1) - 일차 세계대전

   1918년 10월 10일, 독일 pasewalk로부터 온 늙은 사제가 부상자들에게 암담한 소식을 전달하기 위해 근처의 군 병원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우린 전쟁에서 졌고, 이제 독일 제국은 존재하지 않아."

  노사제는 충격받은 부상병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휴전조약이 다음날 이뤄지며 독일은 이제 공화국이고, 제국의 영도자였던 카이저는 퇴위당한다는 것이었다. 가스 중독에서 회복중이던 한 상병은 군중들로부터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멀어져갔다. 훗날 그는 이날을 회고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충격을 받아 병동으로 비틀거리며 돌아왔고, 아픈 머리를 모포와 베게 사이에 파 묻을 수밖에 없었다."

  전쟁이 낳은 최악의 후폭풍인 퇴역군인 아돌프 히틀러는 울부짖었다. 이건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아리안족의 국가인 독일이, 20세기를 지배하도록 운명지어진 국가가 패배한 것이다. 그는 필사적으로 패배의 이유를 찾았다. 유태인과 볼셰비키, 그리고 심지어 민주주의자에 대한 불타오르는 증오에 휩싸여 있었기 때문에, 답은 간단했다. 독일 제국은 제5열분자, 히틀러의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비열한 무리들과 사악한 범죄자들"에 의해 등 뒤에서 칼에 찔린 것이다.
   1차 세계 대전은 온 세계가 여전히 쓰라리게 기억하는 독재자를 만들어냈다. 잔혹한 프로파간다, 융단 폭격, 무서운 군사 기술, 세계를 불길로 휩싸이게한 요구, 이 모든 히틀러의 주요한 2차 세계 대전의 정책은 그 자신의 "Great War" 경험과 연관되어 있다. 

   1941년, 히틀러 자신은 이것을 스스로 인정하며 말했다. "내가 전쟁에서 돌아왔을 때, 나는 전선에서의 경험도 가지고 왔다. 나는 그 경험에서 국가 사회주의 체제를 만들어낸 것이다." 실제로, 아우슈비츠를 만들어낸 히틀러의 왜곡된 다위니즘의 씨앗은 일차 세계 대전의 참호과 방공호에 널부러진 전사자들의 시체들 사이에서 자라난 것이다. 그러나 모든 세대가 전쟁을 경험했지만, 대부분은 전쟁의 공포에서 사로잡혀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집으로 돌아가서 좀 더 문명화되고 더 근대화된 사회를 재건하는 데 기여했다. 왜 히틀러는 달랐을까? 전쟁이 일어난 몇년동안 그에게 무슨일이 벌어진 것인가?

  히틀러의 1차 세계대전의 이야기는 1914년이 아닌, 5년 빠른 1909년에서 시작한다. 히틀러는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수도인 빈의 빈민가에서 살았다. 양친이 모두 사망하고 물려받은 유산을 써버렸기에, 히틀러는 우편엽서의 그림을 그리거나 지역 사업가를 위해 광고를 도안하는 등의 임시적인 일을 하면서 겨우 생활했다. 그의 꿈은 비엔나 예술원에서 두번의 거절을 당하면서 꺽여버렸다. 그날 밤 그는 기차역 뒷편의 싸구려 여관에서 잠을 잤다.
   Reinhold Hansich라는 한 부랑자는, 미래의 총통에 대해서 이렇게 기억했다.
  "첫날 내 침대의 옆에 앉았던 오래되어 다 떨어진 바지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던 사람이 바로 히틀러였습니다. 지붕이 없고 지독하게 방치된 상태로 몇일동안 방랑하고 있었기 때문인지 그의 옷은 이가 들끌고 있었지요."

   히틀러는 진심으로 그가 예술적 천재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능력을 인정하길 거부했던 사회에 대해 분노했다. 불행하게도 그의 좌절감을 표출할 수 있는 수 많은 대상이 이 실패한 예술가에게 제공되었다. 에드워드 8세 시절, 고급 문화, 예술, 기품의 도시였던 비엔나는 또한 반유대주의의 온상이었다. 게다가 왜곡된 인종적 이론은 대 독일 국가주의의 자극적 개념과 섞여있었다. 이런 철학들은 빈곤한 히틀러에게 개인적, 공동체적 우월감의 감정을 심어주었다.
- (2)에서 계속

원문 : http://www.firstworldwar.com/features/aslowfuse.htm

Firstworldwar.com의 메인 페이지에 오늘의 기사로 뜬 "느린 도화선 : 히틀러의 일차 대전의 경험"을 번역한 글입니다. 1차 세계대전은 아시아나 북미에 큰 영향이 없었던 반면에 유럽에서는 장기 19세기를 끝장내버리는 그야말로 "Great War"였기에 여전히 그 시대는 역사가의 연구 대상이 되고 있으며,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2차 세계 대전은 1차 세계 대전의 종속적인 위치라고도 말해지기도 합니다. 이런 견해는 사실상 2차 세계대전에서는 서부 전선에서 프랑스의 빠른 붕괴로 인해 많은 전사자들이 나오지 않았고, 동부 전선에 집중된 독소전이 2차 세계대전의 전사자의 대다수를 차지하기때문이라는 이유에서 나타나기도 합니다. 반면에 1차 세계대전은 오히려 동부 전선은 러시아군의 패퇴와 볼셰비키 정부의 강화로 빠르게 종식되었고, 주요한 전장은 서부전선이었으며 지리한 참호전은 양측 모두에게 이전의 어떤 전쟁보다 더 참혹한 피해를 안겨다 주었기 때문에, 이른바 "서구"인들은 여전히 1차 세계대전에 대해서는 끔직한 기억으로 추억합니다. 이렇게 엄청난 충격을 가져다 준 세계 대전은 필자가 서술하는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공포의 기억으로 남았을 뿐이지만, 히틀러에게는 오히려 그의 이후 행동을 추진하게 하는 강력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어째서 히틀러만 달랐을 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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