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프레히트 대공 : 제국의 가장 뛰어난 왕족출신 군지휘관이자 나치에 반대한 왕세자 - 일차 세계대전

   왕족이나 귀족이 군 지휘관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드는 느낌은 뭘까요?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실력도 없는 무능한 귀족이 군지휘관이라니 말도 안돼!'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오늘 소개할 바이에른의 루프레히트 대공은 그렇게 생각한 당대 사람들-군 최고 사령부-조차도 깜짝 놀라게 할 만큼 뛰어난 지휘력으로 1차 세계 대전에서 손 꼽히는 지휘관으로 평가받았습니다. (물론, 루프레히트가 군사적으로 무능했다면 사실상 1차 세계대전은 더 빨리 종식되어 이후 역사는 조금 변했을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리고 당시 루프레히트의 부대에 히틀러가 복무하고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더욱 더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까요. ^^:) 그리고 단지 뛰어난 지휘관이었다면 오랬동안 기억에 남지 않았을 테지만, 루프레히트는 전후 나치 정권에 반대 입장을 철저히 함으로써 가족들은 나치의 강제 수용소에 갇히고 본인은 나치의 추적을 피해 도피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군사적으로도 무능했고 나치가 독일의 정권을 움켜쥔 것을 누구보다 기뻐했던 빌헬름 2세와 비교하면 참 대조적인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루프레히트 폰 바이에른 (Rupprecht von Bayern
  바이에른 왕국의 마지막 왕세자로서, 1차 세계대전 동안 독일의 제 6 군과 서부 전선의 북부 집단군(루프레히트 집단군)을 지휘했다. 보통, 바이에른의 왕세자 혹은 바이에른 대공으로 불렸으며, 그는 그외 프랑켄과 스바벤 공작, 발츠와 라인 백작을 겸하고 있었다. 애초에 그를 6군의 사령관으로 임명한 것은 그의 고귀한 신분에 대한 예우를 하는 성질의 것이었지만, 그가 가진 높은 수준의 군사학 지식으로 말미암아 그는 제 6 군을 성공적으로 지휘할 수 있었으며, 실제로 뛰어난 군 지휘관임을 증명했다. 1914년 8월, 로렌 전투에서 루프레히트는 프랑스의 공세를 저지하는 데 성공했고, 같은 달 말 오히려 반격을 가했다. 물론, 그 반격은 프랑스 군의 방어선을 돌파하는 데는 실패했고, 그 상태로 서부 전선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고착상태에 빠졌다. 1916년, 루프레히트는 원수봉을 받았고 그해 8월에 그는 독일의 북부 집단군-이른바 "루프레히트군"-을 지휘하게 되었다. 일부 역사가들은 루프레히트를 1차 세계 대전동안 가장 훌륭한 독일 왕족 출신 지휘관으로 꼽기도 한다.

  전쟁이 끝난 후, 루프레히트는 혁명으로 인해 바이에른 왕국에 대한 상속권을 상실했으나, 일부 왕당파들은 여전히 그를 바이에른의 정당한 통치자로 여겼다. 이후 아이러니컬 하게도 1차 세계 대전 당시 그가 지휘하던 군의 말단 병사에 불과했던 히틀러가 나치당으로서 정권을 잡게 되었고, 1939년 루프레히트는 나치 독일 정권에 반대함으로써 이탈리아로 추방되었다.
다하우 강제 수용소

  1944년 10월, 나치가 헝가리를 점령하자 루프레히트는 체포를 피할 수 있었지만, 그의 아내와 아이들은 붙잡혀서 브란덴부르크의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에 수용되었다. 1945년 4월초, 그의 가족들은 다하우 강제수용소로 이송되었고, 같은달 미군들에 의해 해방되었다. 그러나 안토니아 왕세자비는 투옥생활에서 크게 건강이 악화되어 몇년 후 사망했다.
   루프레히트 대공은 독일 해방이후 바이에른의 뮌헨으로 돌아와 여생을 보내다 1955년에 사망했다.

안토니아 왕세자비

만년의 루프레히트 대공
루프레히트와 안토니아 사이의 아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