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적 지지, 그 정당성에 관하여 잡동사니

  몇달전의 대통령 선거의 후폭풍이 아직도 뜨겁게 느껴지는 지금, 새로운 논란이 이글루스에서 불고 있습니다. 이른바 사표론과 비판적지지라는 오래되고도 해묵은 논쟁거리가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르는 데에 대해 내심 상당히 불만입니다.
  이에 대해서 쓰기전에 먼저 제가 정치적으로 지지하는 세력을 밝히자면, 지금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비판적 지지의 대상인 "통합민주당"입니다. 대의민주정에서의 정치권력은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투표권을 가진 시민들의 지지를 받는 정치세력에게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한 정치 세력을 지지하는 이상 저 역시도 제가 지지하는 정치 세력이 다른 투표권자들에게 지지를 받아 정치 권력을 조금이라도 더 획득하는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은 다른 정치 세력을 지지하는 분들역시 가지고 있는 생각일테고 말입니다.
   제가 지금 이글루스에서 벌어지는 이 논쟁이 불쾌한 것은 바로 이점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지지하는 정치 세력은 솔직히 가망성 없으니, "내"가 지지하는 정치 세력에게 힘을 보태주는 것이 어떠냐? "당신"이 지지하는 정치 세력과 "내"가 지지하는 정치 세력간의 차이가 "당신"과 "내"가 지지하는 정치세력의 '공적'(?)간의 차이보다는 적지 않느냐?]
   이런 생각을 저변에 깔고 있는 주장은 지지하는 대상을 바꿀것을 요구 받는 이의 정치적 표현의 권리를 강탈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원리적으로 따지면, "내" 주장에 따라 지지의 대상을 바꾸어 논쟁의 불을 지핀 분의 의도하는 대로 정치적 상황이 전개된다고 해도, "나"는 지지하는 정치세력의 정치 권력 지분의 증가+반대하는 정치세력의 권력 약화라는 +2 Point를 획득하는 것이나 다름없지만, "나"의 주장에 따라 지지 대상을 바꾼 이는 단지 반대하는 정치세력의 권력 약화에서 +1, 원래 지지했던 정치 세력을 정치 권력에서 퇴출시키는 데 기여하게 되므로 -1하여 합하면 0 Point, 결국엔 그의 정치적 대차대조표에서는 아무런 이득을 보지 못하는 것이나 다름 없게 됩니다.
  투표에 의한 정치행위가 Positive 적인 행동과 Negative 적인 행동의 합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비판적 지지라는 것을 주장하는 것은 Negative적인 행위를 해야 한다는 것을 지나치게 당위론적으로 강조하여, 다른 사람의 정치적 이익을 훼손하는 어떻게 보면 상당히 도덕적으로 비판받을 만한 행위로 보일 수 있습니다. 

   이런 주장이 그래도 의의를 보일 수 있으려면, 적어도 두가지의 전제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바로 더 이상 실제 투표 행위자의 총수가 증가하지 않아 다른 행위로는 정치적인 '공적'의 권력 획득을 막지 못한다는 한가지 전제와 그 '공적'의 권력 획득에 의한 실(失)이 "나"의 주장에 따라 정치적 세력에 대한 지지를 바꾸어서 훼손되는 "상대방"의 정치적 실보다 클 때라는 또 다른 전제가 가능할 때 말입니다.
  
  이 두가지 전제가 만족되지 않는 한, 지지대상을 바꾸어서 비판적 지지를 해달라는 주장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 세력의 지분을 늘리기 위한 이기적인 행동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런 도덕적인 비난이 부당하다고 생각한다면, 그와 같은 주장을 할것이 아니라 적어도 첫번째 전제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 자신의 주위에서 투표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사람을 투표장으로 한명이라도 더 끌여들이고 그 사람에 대해서 지지를 호소하는 게 합당한 것이 아닐까요? 현재 이번 국회의원 총선거 투표율이 50%를 간신히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지금, 이미 확실히 지지하는 정치 세력이 있는 사람의 정치적 이익을 훼손하는 것보다는 투표를 하지 않을 50%에 가까운 냉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게 훨씬 더 합리적이고 효과적일 것입니다. 
   이건 불가능한 소리라고요? 그럼 이런 정치에 냉소적인 사람의 마음을 바꾸지도 못하면서 이미 확실하게 정치적 지지세력을 가지고 있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는 사람의 마음을 돌려 놓는 것은 쉬운 일일까요?

  누구나 행사할 수 있는 표는 소중한 한장입니다. 그런 소중한 한장의 정치적 권리를 앗아갈 수 있는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 정치적 역학, 물론 중요하죠. 하지만 대의민주정치에서 투표라는 행위는 투표권을 가진 시민의 "정치적 의사"를 표출하는 유일한 기회이자 권리라는 기본을 잊으면 안됩니다.

핑백

덧글

  • 산왕 2008/04/06 00:52 #

    비판적 지지라는 건 허상..이겠죠 --; 아무것도 지지하지 않고 그저 상황에 따라 투표하는 것도 나쁘진 않다고 생각하지만 거기에 신념을 투영하는 건 일종의 사기겠죠 orz
  • 키치너 2008/04/06 02:09 #

    산왕 / 정치적 상황을 근거로 타인의 권리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이기주의에 불과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리고 비판적 지지라고는 하지만, 애당초 상황적 논거때문에 지지하는 걸 "비판적" 지지라고나 할 수 있는 걸지도 의문이고 말이죠.
  • ellouin 2008/04/06 02:20 #

    단판 싸움이라거나 1~2년 살고 말거면, 되는 놈 될 놈을 밀어야 겠지만, 좀 더 길게 생각하면 자기 맘대로 하는게 가장 편한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이기적인 자아의 주장이다라는 말씀에 와닿는게 많습니다.^^
  • 키치너 2008/04/07 01:09 #

    ellouin / 투표를 안 하는 사람에게는 개인의 정치적 자유다 존중한다 라고 말하면서 투표에 참가해서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려는 이에게는 대의를 위해서 그들 자신의 정치적인 아이덴티티를 포기하라는 것은 "비판적 지지"를 주문하는 이들의 사상마저도 의심하게 합니다. 제가 정치적으로 지지하는 세력의 손익과는 별개로, 이는 옳지 않지않다고 생각하기에 "비판적 지지"에는 찬동할 수가 없습니다.
  • quf 2008/04/07 03:33 # 삭제

    이론적으로는 님의 말이 백번 천번 옳습니다.
    하지만 이거 아시는지요?

    2000년 미국 대선에서 조지 W. 부시가 민주당의 앨 고어에게 득표율에서 밀리고도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녹색당의 랄프 네이더 후보가 2%의 득표율을 보이며 고어의 지지층을 잠식했기 때문입니다.

    네이더의 이름이 투표용지에 올라가 있던 주들 중 몇군데(플로리다, 오하이오 등)는
    부동층이 압도적으로 많은데다 인구수도 적지 않아서 매번 대선때마다 중요한 승부처로 떠오른 주였죠.

    결국 네이더는 플로리다에서 97,000여 표를 얻었는데
    당시 플로리다에서 537표 차로 부시가 승리해서 25표의 선거인단을 모두 가져가는 바람에
    전체 득표율에서 밀리고도 선거인단 수에서 앞선 부시가 백악관에 입성하게 되었고
    그 이후 세계가 어떻게 되었는가는 뭐 더 말 안해도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당시 녹색당의 네이더에게 돌아간 97,000여표들 중에
    만일 네이더가 투표용지에서 완전히 빠져 있고 고어vs부시의 2파전만 있었다면
    과연 몇 명이나 부시에게 표를 줬을까 생각해 보면 답은 쉽게 나오는거죠.
    그들의 표가 전 세계의 운명을 좌우했다고 봐도 결코 과장이 아니거든요.

    님의 말씀은 한국내의 정세, 좀더 정확히 말하면 통합민주당이라는 세력과 진보정당들 간의 차이가 결코 작지 않다는 특수한 상황하에서 좀더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님의 논지는 통합민주당은 사이비 개혁 세력이니 외면해야 한다가 아니라
    완전히 일반적인 원칙론인데.. 그게 과연 모든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인지라는 문제에 관해서는
    님께서 좀더 심각하게 고민을 해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참,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덧붙이자면
    비판적 지지를 해달라는 주장 내지는, 백번 양보해서 비판적 지지를 거의 강요하다시피 하는 투의 주장이라 할지라도
    절대 님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강탈'하는 것이 될 수는 없습니다.
    목에다 칼을 겨누면서 협박하거나 그런 게 아니니까요.
  • 키치너 2008/04/07 16:44 #

    quf / 이 글이 원칙론은 맞습니다만, 반박의 핀트를 잘못 잡으신 것 같군요. 비판적 지지라는 현 상황에서는 적어도 요구할 주장이 아닙니다.
    먼저 한나라당의 안정적 과반수를 비판적 지지를 통해 허물수 있는 가에 대해서 회의적이며, 진보신당을 비롯한 비판적 지지를 요구받는 사람들이 통합민주당을 지지함으로써 얻는 정치적인 이득 혹은 만족감(득)이 통합민주당을 지지하지 않음으로써 잃게 되는 것(실)보다 큰지 역시 비판적 지지를 요구하는 이들이 고려하지 않는 문제지요.

    그리고, 물론 표현의 자유를 '강탈'하는 것은 아니지요. 하지만, 비판적 지지 요구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한나라당의 안정적 과반수 획득이 "국가적 위기"를 초래하며, 비판적 지지를 하는 것으로 이를 막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정치적인 "협박"이 아니고 또 무엇입니까?

    그리고 저는 위에서도 밝혔습니다만, "통합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으로서(적어도 이당이 민주주의의 이상을 가장 잘 실현해 줄 것이라고 믿기때문에) 개인의 정치적 사상의 존중을 당장의 정치 권력의 획득 여부보다 훨씬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정치적 현실을 떠나서 이 것이 대의민주정치가 진정으로 "민주주의"가 되기 위해서 가장 근본이 되기 때문이죠. 민주주의의 이상을 가장 잘 대변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여 지지하는 정당이 집권하기 위해 다른 이의 정치적 사상을 왜곡한다? 솔직히 이해하기 힘든 사고입니다.

    진정으로 표가 필요하다면, 정치를 냉소하는 유권자의 절반에 약간 못 미치는 이들에게 호소하는 것이 다른이들의 정치적 의사를 왜곡하는 것보다 정치적인 양심에서도, 한나라당에 대한 효과적인 반대로서도 더 바람직할테지요.
  • quf 2008/04/08 15:16 # 삭제

    제가 저 위에 달아놓은 댓글의 서두에서도 밝혔듯이 님의 원칙론에는 반박할 마음이 없습니다. 긴 댓글을 통해 위에 써놓으신 글내용을 재탕하셨는데, 구구절절 옳은 말씀입니다. 다만 제가 던져드린 2000년 미국 대선의 에피소드와 그 역사적인 선거에서 원칙론을 내세우며 민주당에 비판적 지지를 차마 던져줄 수 없었던 녹색당 지지층과, 그 결과가 부시행정부 1기 4년동안 전세계에 미쳤던 파급효과라는 화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 고견을 듣고 싶었던 것이지, 구구절절 옳다고 저도 원글에서 누누이 강조하며 인정했던 님의 의견에 반박따위를 하려고 답글을 단 건 아니란 말씀이지요. 제가 반박의 핀트를 잘 못 잡았다고 하셨는데, 오히려 주인장님께서 제 글 자체의 핀트를 헛짚으신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정치적 현실을 떠나서'라는 말씀은, 역시 원칙론으로서 무슨 말씀인지는 알아듣겠으나, 실제로 정치적 현실을 떠나서 생각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런지요. 부시행정부가 벌인 이라크 침공과 그로 인해 흘려진 수많은 사람들의 피, 그로 인해 상승한 국제유가와 그것이 전세계 경제에 미친 파급효과, 한나라당에 과반 이상의 의석이 넘어갈때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와 그로 인해 혜택을 못 받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건강문제 같은 것들은 손으로 만지고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현실'입니다. 이런 현실적인 문제들과 구구절절 지당한 님의 원칙론 사이에서 과연 님은 어떤 고민을 하셨으며, 어떤 식으로 타협점을 찾으셨는지 혹은 아직 타협점을 찾지 못하셨다면 어느 지점에서 선을 그으실 것인지를 알고 싶어서 댓글을 달았는데 돌아온 것은 님 글의 내용정리 재방송이라니 김이 좀 빠지는군요.

    거듭 말하지만 저는 님의 글에 대한 반박을 하려는게 아닙니다. "아주 좋은 말씀이고 저도 거의 모든 부분에서 동의하긴 하지만, 이런 측면에서는 생각해 보셨느냐, 나도 생각 많이 해봤는데 골이 빠개지겠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라는 말씀이 올씨다.
  • 키치너 2008/04/08 18:01 #

    quf / 길어지기에 따로 포스팅했습니다.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