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끝. 1학기 종료. 종강. 그리고 .. 일상

부족함을 메꾸어준 나의 많은 '동료'중 일부


    23(월) : 호흡기, 순환기
    24(화) : 행동과학, 환자와 의사와 사회

   2008학년도 1학기 3 카테고리의 기말고사가 끝난 지금, 머릿속에 남은 건은 드디어 끝냈다는 뿌듯함과 실수에 대한 자괴감, 지긋지긋한 암기로부터 해방감, 자유로움에 대한 희망감이다.
  
   3weeks lectures-mid term exam-3weeks lectures-final exams을 3번 반복한 121일간의 이번학기는 임상 의학에 대한 호기심과 나, 그리고 '우리들'에 대한 자부심을 강화시킨 매우 즐거웠던 시기였던것과 함께 내 자신의 건강을 좀 먹어 들어갔고, 썩 즐거이 밝히기 힘든 아픔과 좌절을 가져왔으며, 그리고 꿈에 대한 많은 상상을 앗아간 고통스러운 나날이기도 했다.

   매일매일, 아니 매시간 마다 바뀌는 교수님들. 하루에 적게는 3분에서 많게는 6분의 제각각 자신의 분야에서 일류로 자부하는 교수님들을 뵈면서 나는 과연 10년, 아니 20년 후에 100여명이 넘는 후배이자 제자들에게 저렇게 당당한 모습으로 '인간을 보살피는 법'을 나눠줄 수 있을 지 생각하니, 그날의 성공적인 debut는 고사하고 그곳까지 도달하기 위한 수 많은 시간과 사건들이 마치 지층에 켜켜이 쌓인 거대한 퇴적층의 두께처럼 내 앞에 서있는 것같은 느낌을 받곤 했다.

   물론 교과서에 쓰인 것처럼 '우리'가 배우는 목적은 사회 대중들의 건강과 보건을 위한 일차 의료이기 때문에, 오히려 내 앞에서 '우리'에게 체계와 지식, 그리고 술기를 말하는 교수의 모습은 일반적이라기보다 특별한 것에 가깝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 이상적인 모습으로 자리잡아 가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친구들은 말하곤 했다. 이곳은 모래지옥과 같다고.

   나는 그말에 동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딴 생각을 했다.
   '모래지옥에 빠진 우리들은 그럼 어떻게 되는 거지?'

   또 친구들은 말했다. 천국은 언젠가 지옥이 될 수 있다.
   그래. 그렇지만 저 말이 참이라면 '지옥이 될 수 없다면 천국도 아니다'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배워야 할 것이며, 더 많은 교수님들을 만나고 더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갖게 될 것이라는 미래는 나, 아니 '우리'들에게는 변하지 않는 것일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눈물흘리고, 후회하고, 상처입으며, 좌절하는 것도 이미 예정된 것이다.

   그래서 어떤이는 '우리'가 삶의 불확정성을 배제당했다고, 우리는 평범한 젊은이로서 살아가는 기회를 상실했다고 말하고, 어떤이들은 '우리'는 단지 정해진 목표만을 위해 끝없이 경주하는 고딩의 그 시간에 영원히 멈춰버린 인생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 그러나 그것이 꼭 슬픈 것일까? 아니, 남들과 다른 인생을 살아가서는 안되는 것일까? 정해진 목표가 있어서 그것에만 매달릴 수 있는 것이 안타까운 일일까?

   모 교수의 강의에서 '우리'가 배우는 것은 과학이 아니라, 과학적인 수단을 이용한 '예술'이라고 했다. 그래. 예술. 이 예술에는 많은 댓가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그렇기때문에 우리는 여기서 많은것을 담보로 그 댓가를 치루고 있다고 했다.

   슬프지 않다. 안타깝지 않다. 힘들지 않다면 거짓이지만, 그렇다고 포기하진 않는다.

   앞으로 13년. 긴 세월이 내 앞을 기다리고 있다. 많은 것을 뒤흔드는 커다란 사건이 없다면 13년 후, 그 날에도 '오늘'의 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의 나를 부정하지 않고, 많은 가치가 그대로 전승되었음에는 틀림없지만, 또한 많은 것이 바뀐 미래의 나 역시도 '나'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제 '난' 앞을 본다.

덧글

  • 지선 2008/06/29 00:46 # 삭제

    멋지네요 힘내세요^^
  • 키치너 2008/06/29 16:17 #

    감사합니다. ^^ 이번 학기는 여러모로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 후유소요 2008/07/08 21:47 #

    와우. 진심으로 응원을 보내고 싶은 글이네요 ^^ 강하게 나아가는 모습은 언제 봐도 좋아요 'ㅅ'*
  • 키치너 2008/07/08 23:16 #

    감사합니다^^;;; 이렇게 글을 써놓으면 나중에 와서 부끄럽기도 하지만, 글을 쓰던 그때의 격동하던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아 아직도 이런 민망한 글을 버젓히 써놓곤 한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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