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미래사 :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미래의 가치

인류의 미래사 - 21세기 파국과 인간의 전진

  많은 사람들이 미래를 알고 싶어 하고, 나름대로의 예측과 판단을 일상생활에서도 수없이 행하고 있다. 현재라는 시간개념이 찰나에 불과하다면 우리는 좁게는 일상생활에서부터 넓게는 사회적, 정치적 영역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고와 행동을 현재가 될 미래에 대해 펼치고 있는 것이다. 미래는 우리와 동떨어진, 과학자들이나 소설가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미래를 아는 것은 우리의 삶을 조금이라도 합리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데 필수적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부터 많은 이들은 미래에 대한 판단과 예측을 여러 형태로 그려왔다. 많은 종교들은 그들의 교리 상당수를 다가올 미래에 대한 계시에 할애하고 있고, 노스트라다무스와 같은 유명한 예언가는 미래를 안다는 것으로 당시대에 궁정으로부터 초청을 받았으며,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현대사회에까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었다. 하지만 많은 미래에 대한 예측, 예언, 계시 등은 초자연적인 현상, 직감, 신적인 능력의 사역 등의 비합리적인 근거를 내세웠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미래에 대한 판단의 영역이 이성적 사고에 의해 판단할 수 없다는 오해를 불러왔다. 이러한 오해는 20세기 이르러 학문의 한 분야로 미래학이 성립된 이후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고, 이러한 편견은 많은 이들이 여전히 미래를 “운명”의 영역으로 치부하는 데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인류의 미래사는 이러한 운명의 영역을 합리적인 학문이 어떻게 기술할 수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정치경제학적인 서술로 첫 장을 시작하는 이 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유명한 경구처럼 거시적인 관점에서 인간 사회의 정치적 변화를 큰 줄기로 삼아 그 변화 사이에서 많은 양상을 사회학적으로 ‘풍경’을, 경제학적으로 풍경 속의 ‘움직임’을, 과학과 의학적 설명으로 풍경 자체의 ‘변화’를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역사서의 모습을 띠고 있는 이 책은 이런 변화를 숙명적, 운명적으로 그리고 있지 않다. 1부의 테마인 자본주의 철학의 몰락도, 2부에서의 사회주의 사회의 붕괴와 3부에서의 아나키즘적인 사회의 성립도 단정적인 설명을 하지 않는다. 세 사회의 몰락, 붕괴, 성립을 그려내면서 독자들이 납득할만한 근거를 내세우지만 반대로 독자들에게 저자가 그려내는 모습이 유일한 선택지가 아니라는 판단을 할 수 있는 여지를 곳곳에 남겨두고 있다. 이같은 서술은 이 책을 읽는 것이 단순히 하나의 흐름을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저자가 펼쳐놓은 다양한 미래의 모습을 다양하게 조합하여 유일하지 않은 다양한 미래상을 상상할 수 있는 즐거움을 주고 있다.

  큰 정치적 변화를 줄기로 삼아 여러 선택항을 보여주면서 ‘역사’의 흐름을 끌어가는 가운데, 저자는 상당한 양을 할애하여 독자들에게 다른 하나의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과학, 특히 의료분야에서 유전의학의 진보라는,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미래의 모습이 야기할 새로운 종의 출현, 즉 미래의 인간이 기존의 많은 육체적 혹은 정신적 제약을 떨쳐낸 새로운 존재가 될 것인지에 대해서 매서운 시각으로 파헤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감정에 의해 행동이 지배당하지 않고 이성적인 판단으로 ‘현재’의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긴 삶을 영위하는 ‘그들’을 ‘인간’이라고 할 수는 있는지, 그들과 우리의 사회를 구성하는 근본적인 공리라고 할 수 있는 인간적 가치가 공존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이 의문을 통해 독자들은 철학적 사고를 할 것을 요구받는다.

  미래를 예측하고 밑그림을 그려낸다는 것은 쉬워 보이면서도 고통스러운 일이다. 사실 많은 학문에서 각자 주장하는 미래 예측을 모조리 가져다가 혼합시켜 버리면 그걸로 미래 예측은 끝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그림을 그리는 당사자 자신의 유연하고 합리적인 사고와 스스로의 관점이 없다면 그 작업은 미녀들의 가장 아름다운 부위들만 따서 완벽한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려는 오산과 다를 바가 없으며, 단순히 예측과 근거만을 나열한 미래학은 과거의 예언, 종교적 계시, 참언들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각자 자신의 미래상을 생각하고 그려보며 스스로 우리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게 할 때, 미래학은 가치를 갖게 된다.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으며 미래가 점술가나 종교인, 과학자, 소설가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판단하게 된다면, 그리고 바람직한 미래상에 대해서 무언가 깨닫게된다면, 이 책은 ‘자기 예언적’인 성취를 이루지 않을 까?


- 위에 링크된 포스팅과 같은 책을 읽고 쓴 감상입니다. 물론 거의 동시에 쓴 글이긴 합니다만 모 인터넷 매체에 올라간 글이라-대다수 분들은 이름도 안 들어보셨을 곳이긴 합니다만 하핫;- 이제야 블로그에 포스팅합니다. 여기에서 보여주는 미래가 과연 유토피아일지, 디스토피아일지 저로서는 솔직히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아니,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와는 아예 다른 '종'이 되어버린 후손들이 살아가는 세계를 우리 잣대로 판단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보여주는 미래상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서 벌어지는 많은 논쟁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기 때문에 이런 미래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테지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겪을 미래는 아니지만, 우리는 그 미래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살아갈 테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