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문화 유산을 찾아서 : 창덕궁을 향해 떠나자 (1) 역사

   8.17 일까지 할 일/ 아니 해야만 하는 일.

   지난 8월 17일, 耿君님과 함께 창덕궁을 답사관람하고 왔습니다. 사실 당일 새벽까지 미몽과 같았던 방학의 끝을 부여잡는 술자리를 가졌던 터라, 아침에 깨어나서도 조금 정신이 얼얼했지만 엎어져도 창덕궁에서 엎어지자(-_-)라는 일념하에 마음만은 가볍게 창덕궁으로 향했습니다.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입니다. 정궁이자, 법궁이었던 경복궁과는 달리 궁성을 쌓지 않았기 때문에 경복궁의 광화문에 비하면 소박하게 느껴질 정도의 크기이지만, 사실상 경복궁내의 제 1 문이라고 할 수 있는 흥례문보다는 큰 크기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아, 그리고 일반적인 한옥 지붕을 보다가 궁궐 지붕을 보면 조금 다른 점이 보이지 않나요?  네, 거기 어처구니가 있다고 하시는 분, 맞습니다 맞고요. 하지만 어처구니 아래에 또 무언가 특이한 점이 보이시죠? 바로 '양성바름'입니다. 사실 저도 그날 당일까지 저걸 문화재 복원하면서 발라버린 시멘트인줄 알았는 데, 알고보니 궁궐에서도 주요 건물에서만 사용되는 격조있는 양식이었습니다. 부디 조상님들이 지금까지 저걸 시멘트로 알고 있던 이 무식한 후손을 용서해 주시길 바랄 뿐이죠. orz, 그리고 저 양성바름에 사용되는 재료는 삼화토라고 합니다. 건축에는 무지하지만 아마 석회쪽인 것 같아요.

   창덕궁은 매시 15분, 45분(한국어기준)에 문화유산 해설사분과 함께 입장이 가능합니다. 자유관람은 목요일 하루로 한정되는 데, 관람권 가격이 장난이 아니에요. (ㄷㄷㄷ) (무려, 15,000Won! 물론 값어치를 하는 게, 평소의 해설 관람은 루트가 정해져 있고 넓은 창덕궁을 모두 돌아보는 게 아니라서 말이죠^^;)

  10시 40분이 조금 넘어서 창덕궁에 도착해서 표를 끊으니, 48분. 15분에 입장하려면 아직 시간이 남아있더랍니다.

   정부 종합청사가 떡 하고 버티고 있는 경복궁과 달리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에서 정면을 쳐다보면 조금은 휑합니다. 조금만 옆으로 걸어가면 현대사옥이 버티고 있을 정도로 중심가인데도, 궁궐앞이라 그런지 건물들이 기를 못 펴는 것 아닐까 하는 조금은 실없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또, 잘 모르시는 분은 궁궐앞을 그냥 흙으로 노출시켜놨다고 불평하실 지도 모르지만, 사실 이건 돈화문의 월대와 문턱입니다. 일제시대에 매몰시켜 버린 걸 다시 복원해 놓은 거랍니다. ^^

   돈화문을 들어서서 오른쪽으로 돌면 처음 마주치는 돌다리. 금천교입니다. 태종 11년에 건설된 서울에 남아있는 옛 다리 중 가장 오래된 돌다리라고 합니다.

    궁궐에 들어갈때는 물-보통은 시냇물-을 건너서 들어가게 되어있는 전통에 따른 것이라고 하는 데, 이는 풍수설에 의한 명당수의 역할을 기대하는 것이라고 하죠.
- 물론, 궁궐이 더 이상 제 기능을 갖지 않고 있는 '박제'로서 남은 지금은 더 이상 물이 흐르지 않고 있습니다.

   금천교를 지나 궁궐의 제 2 문인 진선문을 통과합니다. 경복궁과는 달리, 창덕궁은 제1문인 돈화문, 제2문인 진선문, 제3문인 인정문이 직선으로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문의 배치는 북한산의 매봉기슭에 산자락을 안고 세워진 창덕궁에 엄숙함과 장엄함보다는 유연하고 부드러움을 느끼게 하는 데 한 몫하고 있지요.

 옛 궁궐에 이제는 창덕궁 문화유산 해설사분이 이끄는 한 무리의 관람객외에는 인기척조차도 없습니다.  불과 100년전, 순종이 즉위한 뒤로 다시 정궁이 되었던 창덕궁의 하늘엔 암운이 가득했겠지만, 오늘의 주인조차도 없는 창덕궁엔 푸른 하늘만이 비추는 가운데 조금은 쓸쓸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숙장문 오른쪽으로 쭉 늘어선 열주의 회랑엔 더 이상 관청도, 관원도, 붉은 도포도, 푸른 도포도 보이지 않지요.

  정전인 인정전으로 가기위해 제3문인 인정문을 오르고 있습니다. 조선의 궁궐은 모두 정전 앞까지 문을 3개씩 두고 있는 데, 그것은 당시 제후국의 지위를 맞춰-제후를 만나기 위해서는 3 문을 거쳐야 한다는 격식에 따라- 지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인정문을 지나 모습을 드러낸 인정전, 조선조 동안 가장 오래 임금의 정궁으로 기능한 이곳에서 왕의 즉위식, 세자 책봉식, 신하들의 하례, 외국사신의 접견 등 공식적인 행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예종, 연산군, 효종,현종,숙종,영조,순조,철종,고종으로 이어지는 모두 9명의 임금-조선왕조사에서 즉위하여 통치행위를 한 임금은 모두 27명이죠.- 이 창덕궁에서 즉위한 것도 창덕궁의 조선왕조에서의 지위를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겠죠.

  정1품부터 종9품까지 품계석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耿君님이 종9품 참봉을 자처하시던 바로 그곳이었습니다. :)

  보이십니까? 세계 문화 유산에, 엄격한 제한 관람이 이루어지고 있는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 창호지에 구멍이 송송 나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들른 낙선재에서는 더 충격적인 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뭐랄까요... 주인을 잃고, 이제는 모두에게 '제것'이 된 이곳이지만, 씁쓸함은 감출 수가 없었죠.
 
   시간을 거슬러, 조선조로 돌아간다면 과연 전 어디에 서 있을 수 있을까요? 네?! 중인이니까 저기에 제 자리는 없을 꺼라구요? 옙. orz. 품계석을 빤히 쳐다보고 있자니, 네이버의 인기 웹툰인 호랭총각전에서 진행되는 과거시험이 생각나서 조금은 웃음이 나왔습니다. 아, 물론 과거의 궁인 이곳에서는 마음대로 웃을 수 있지만, 어청수 포도대장이 눈을 부라리는 "푸른기와궁™"앞에서는 웃을 수 없겠죠.

   회랑으로 보이는 이곳은 사실 복도가 아니라-_-;; 관청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두 종류의 관청이 있었다고 하는 데, 하나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다른 하나는 관료들의 옷을 공급하는 관청이었다고 하는 군요.
   처마에 늘어선 어처구니-잡상-들에서 이곳이 임금의 正殿이다라는 걸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사실 궁궐의 각 건물에서 정전위에 올려진 잡상의 개수가 가장 많죠. -물론 처연한 사연을 가진 경복궁의 경회루는 예외입니다... .-
    그리고 또 특이한 게 하나 있죠? 네. 바로 지붕의 마루에 李花, 오얏꽃무늬를 단 점입니다. 이건 원래 조선의 전통이 아닌데, 고종이 순종에게 양위한 이후, 일본의 입김으로 구리로 오얏꽃무늬의 장식을 단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궁궐엔 이렇게 조금은 가슴쓰린 사연이 이곳저곳에 새겨져 있습니다.

  인정전의 월대양끝에는 해치-맞나요..? 백호라는 의견도 있던데...-가 새겨져 있습니다. 법을 상징하는 동물이라고 하죠.

  인정전은 조선왕조, 그리고 대한제국이 마지막까지 사용했던 궁궐이기에 이곳저곳에서 근대식 개조를 한 모습이 보입니다. 저 전등들도 그 근대식 개조의 소산이죠.

   물론, 인정전 내부 어좌는 다른 궁궐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 모습입니다. 일월오악도가 그런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죠. - 일본이 식민지배이후 인정전 내부의 어좌를 저희들식으로 고쳐논 사진을 본 적이 있습니다만, 조잡하더군요...

   색이 바래긴 했어도, 여전히 화려한 모습을 뽐내고 있습니다.

  정전 한 가운데엔 봉황이 그려져 있지요. (자료사진)

  월대의 귀퉁이에 무쇠 드므가 보이네요-왼쪽 끝입니다. 드므내에 물을 채워서 화마가 궁궐에 불을 지르러 올 때,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달아나게 하기위해 상징적으로 놓은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보이는 드므가 아니라 부간주라는 데, 이건 액운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하죠.

  - 왼쪽이 드므, 오른쪽이 부간주라고 합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878248)  -

이제 인정전을 떠나, 임금의 집무실인 선정전(宣政殿)으로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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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耿君 2008/08/19 22:23 #

    오우 올리셨군요.

    전 이렇게 상세하고 정보넘치게 올릴 자신이 없어요 ㅠㅠ
  • 키치너 2008/08/19 22:43 #

    쓰다가 너무 길어지는 것 같아서, 내용을 쪼갰는 데 두번째 포스팅을 과연 언제할 지 의문입니다. orz
    - 전 포스팅 한번하면 포스팅力이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 같더라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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