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문화 유산을 찾아서 : 창덕궁을 향해 떠나자 (2) 역사

도심 문화 유산을 찾아서 : 창덕궁을 향해 떠나자 (1)
  자,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을 보았다고 끝이 아니죠, 갈길이 멉니다.

   인정전을 빠져나와, 선정전으로 가는 길입니다.  창덕궁은 경복궁이나 창경궁과는 달리, 궁궐내에 보존된 건물이 많은 편이지만, 안타깝게도 궁궐 곳곳에는 이렇게 과거의 건물 터만 남은 곳이 여럿있습니다. 어쩔수 없는 망국의 슬픔이긴 하지만... 씁쓸함은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선정전을 담 벼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바라봤습니다. 궁궐내의 유일한 청기와 건물인 이곳은 궐내에서 실제로 임금이 집무를 봤던 곳이죠. 이름의 '선정'은 정치를 베푼다는 뜻에서 지어졌다고 합니다. 아,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창덕궁이 처음 지어진 세조 7년(1461)의 건물이 아닌, 인조 25년(1647)에 재건된 건물입니다. - 왜, 조금 이상한 걸 느끼지 못하셨나요? 창덕궁은 분명히 광해군이 즉위하자마자 재건했을 텐데, 인조 25년에 다시 짓다니 말이죠. 그건 바로, 인조 반정 당시 반정군이 궁궐에 불을 놓는 바람에 -_-; 창덕궁의 많은 건물이 화마로 소실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제가 조선의 임금에서 악평을 할 때 꼭 인조를 넣는 이유에 들어가기도 하죠.


  자유 관람이 아니었기에 아쉬움을 뒤로 하고, 선정전을 떠났습니다. 또 쓸쓸한 궐내의 공터를 지나치며 희정당으로 갑니다.
   사실, 희정당은 임금의 침전으로 사용되었지만, 나중에는 집무공간으로도 쓰였다고 합니다. 물론 현재의 희정당은 원래의 그것이 아니라, 1917년 화재로 소실된 후, 경복궁의 강녕전을 옮겨 온 것이라고 합니다. 그때 내부도 서양식으로 고쳐졌고 말이죠. 희정당에서 문 하나만 건너면 대조전이 등장합니다.

  물론 임금께서 희정당에서 대조전을 가느라 옥체에 흙먼지를 묻힐 수는 없겠죠? 바로 저기 보이는 두 건물 사이 통로로 오가셨다고 합니다. 넵. 임금이 아닌 우리들은 걸어야죠. (....)
  임금이 아닌 이들이 대조전을 만나기 위해 통과한(...) 문이 바로 선평문이지요.

  희정당이 침전이라기 보다는, 제 2 의 집무실이라는 느낌이 강한데 비해, 대조전은 명실상부한 창덕궁의 내전이자, 왕비가 머물던 침전, 즉 중궁전입니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삼은 궁궐의 암투가 이 대조전을 중심으로 펼쳐졌을 것을 상상하면 조금은 어깨가 움츠러드는 곳이죠. :) 경군님도 포스팅에서 쓰셨지만, 내전의 건물들은 거의 용마루를 얹지 않고 있는 데, 그것은 용이 임금을 상징하기 때문에, 용이 용이 업고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고나 한달까요? 이렇게 용마루가 없는 건물의 양식을 "무량각"이라고 한답니다.

  한분이 열심히 대조전 뜰내를 돌아다니고 계셨습니다. ^^: 정말 100여년전만해도 망국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지긴 했지만, 한 왕조의 궁으로서 활기를 띄었을 이곳이 이제는 이렇게 관광객의 발소리만이 들리는 적막한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왕국이 아닌 어느 나라를 가든, 옛궁들에서는 이런 아릿한 비애감이 느껴지곤합니다. - 물론, 사람들로 북적이는 궁들은 그럴 감상을 할 여지도 주지 않지만 말이죠.
  하지만 역시 안타깝게도, 대조전 역시 창경궁의 원래 건물이 아닙니다. 1917년 화재로, 창경궁 주요 내전이 불에 타 사라지자 경복궁의 교태전을 뜯어다가 이 자리에 옮겨놓은 것이죠. 지금으로부터 98년전, 1910년 8월 29일, 국치를 맞게 된 장소도 대조전 바로 옆의 흥복헌이라는 건물이었다고 합니다. 대조전에서 많은 임금들이 승하한 것을 생각하면, 나라의 숨도 이곳에서 끊어지는 것이 역사의 이치였을까요?

  앞 포스팅에서 잠깐 설명했었죠? 물을 채워서 화마가 제풀에 놀라 도망가게 하려는 상징적인 목적을 가진 '드므'입니다. 하지만 대조전이 화재로 허무하게 사라진 것을 생각하면, 당시 드므에 물을 제대로 채우지 않았을 것 같군요. (...)

    조선의 시계는 사실 자격루로 대표되는 물시계를 연상하기 쉽지만, 사실 일반적으로는 해시계를 더 많이 사용했을 것 같습니다. 궁궐 곳곳에 놓여있는 앙부일구들을 생각하면 그 생각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말입니다. ^^:
   대조전을 나와 왼쪽으로 돌면, 궁궐의 부엌. '수랏간'을 만날 수 있습니다.

  창덕궁은 일제강점기 이후로도 순종께서 승하하실 때까지, 궁의 역할을 했기 때문에 수랏간도 서양식으로 개조되어있습니다.
   양식을 좋아했다던, 고종과 순종 '폐하 '를 위해(?) 설치된 오븐도 보이는 군요. ^^

  이제 대조전 뒤를 돌아봅니다.

  아궁이가 나타났군요. 궁궐은 일반 한옥과는 달리, 부엌의 불로 난방을 하지 않기 때문에 따로 아궁이가 있습니다. 물론 나무를 때는 것이 아니라 숯을 때지만 말이죠. 그리고 그 연기는...


  계단식으로 꾸며진 화단인 화계에 떡 하니 버터고 있는 굴뚝으로 나갑니다. 사실 어렸을 적에 경복궁에 갔을 때는 저게 굴뚝이 아니라, 장식물인줄 알았지 뭐에요. :(

   궁궐내에 굳이 계단으로 만든 화계를 만든 이유는 아마 도교 사상쪽과 관련이 있다고 들은 기억이 나는 데, 잘 모르겠네요. ^^: 그래도 웬지 분위기가 신선 노니는 듯한 느낌이 나지 않나요?

  대조전 뒷편에는 이렇게 작은 뜰에 괴석-_-; 이 놓여있고, 소나무가 심어진 작은 뜰이 있습니다. 궁궐내의 삭막함이 이곳에서는 어디론가 사라진듯 편안해 보이더랍니다.

   경훈각.. 이었던가요. 역시 1917년 화재로 사라진 것을 경복궁의 만경전을 헐어다가 재건한 건물입니다. 원래는 2층의 구조를 가진 건물로, 일층을 경훈각, 이층을 장광루라고 했다고 합니다. 화재와 일제강점기가 만들어낸 안타까운 역사의 산물이 되버린 거죠.

  자, 이제 길었던 창덕궁 관람도 반환점을 돌았습니다. 바로 선계후원으로 통하는 '신선으로의 문'을 막 통과했기때문이죠.
  "우와앙~! 신선! 신선!" "선녀! 선녀!" 하고 외치는 저 군중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 물론 농담입니다.

  다음편은 후원에서 시작합니다.- 하지만, 아무도 안보는 데 괜히 편수만 늘이는 것 같아서 orz.

덧글

  • 耿君 2008/08/29 22:38 #

    요호호 역시 충실한 포스팅 (저랑 비교된다능)
  • 키치너 2008/08/29 23:11 #

    간략한게 좋은 겁니다. (흑)
    - 내일 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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