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한국 고대사학자] 학술발표회 참관 후기 (1) 역사

   지난 9월 20일 토요일, 한국고대사학회의 "현대의 한국 고대사학자"에 대한 학술발표회가 있었습니다. 학술발표회가 있다는 걸 인지한 건 3개월전쯤이었는 데, 막상 참석하기 직전까지 고민을 꽤나 했습니다. 일단 제대로 아는 것도 없는 미욱한 사람이 학술발표회에서 무엇을 얻어올 것이냐는 것은 둘째치고라도, 오히려 학술발표 현장의 뜨거운 열기에 대한 결례가 되지 않나 싶기도 해서 말이지요.

   아무튼, 결국 그래도 이런 자리를 놓치면 당분간 어디서 이런 값진 논의를 들을 기회가 없겠다 싶어서 참석하기로 하고, 포스팅도 올렸습니다. - 꽤나 제가 의지박약한 사람이라 스스로 족쇄를 채워두지 않으면 마음이 바뀔지도 몰라서... orz - 꽤나 비가 많이 오던 날이라, 발표장에 앉을 수는 있겠지 생각하고 조금 여유를 부리며 출발했는 데 버스가 안와서 -_-;;;;;; 자칫 잘못했으면 이날 가장 관심이 있었던 1주제인 두계 이병도 선생에 대한 조인성 교수님의 발표를 놓칠뻔 했습니다.

  발표장인 국민대 본부관 4층 대회의실앞에서 오늘의 발표자들의 발표문을 수령하고,  조심스럽게 들어가 자리에 앉으니 조인성교수님의 발표가 막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제 1 주제는 이미 공지된 것처럼, "이병도의 한국고대사연구"였는 데, 발표문의 부제는 '한사군, 삼한의 역사지리 연구를 중심으로'였고, 전반적인 발표도 여기에 집중되었습니다. - 여기까지 보시고 약간 아쉬워 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은 데, 이건 이후 토론자인 이문기 교수님도 비슷하게 느끼신 것 같았고, 토론시간에 이점이 언급됩니다. ^^;;

   조인성교수님은  머릿말에서 이병도 선생의 학계에서의 위치와 학문적 성취에 대한 짧은 소개로 시작하여, 이병도 선생이 "특히 기왕의 통설과 달리 한사군과 삼한의 위치를 나름대로 비정하였던 것을 크게 내세"웠다는 점을 주제 선택의 이유로 들었으며, "우선 이병도가 처음 한사군과 삼한의 역사지리를 어떻게 파악하였는가 하는 점과   한사군과 삼한의 역사지리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게 된 경위, 끝으로 신학설 성립을 가능하게 하였던 사료 비판에 대해 논할 것"이라고 발표의 요지를 정리했습니다.

   사실, 한국 고대사에 대한 지식은 국민보통교육에서 다루는 '국사'의 고대사에서 크게 발전하지 못한 본인으로서는 발표문을 따라가기만도 상당히 벅찬 실정이었습니다만, 대충 요지를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지 않나 싶습니다.

   [이병도의 한국 고대사 연구는 역사지리적 관심에서 출발하여 국가의 건국발전에 대한 연구로 관심이 확대되었고, 역사지리의 고찰을 역사 연구의 기초로 보았다는 점은 기존의 통설처럼 일본 학계의 영향을 받은 것과 조선 후기의 실학자들 중심의 역사지리 연구를 토대로 하였던 측면이 있었다는 점] 과 [이병도는 한국 고대사에서 많은 문제가 미해결인 이유는 근본 사료가 부족하고, 불명한 것도 있지만, 그 부족하고 불명한 기록도 철저히 살피지 않고 후대인의 해석을 오히려 더 중요시 여긴것과 고대에 있어서 國郡의 강역을 근대 우리들의 확대된 의식으로써 해석하여 자연적 지리와 당시에 있어서의 대세를 무시하던 폐단이 있었다는 점을 들었고, 이런 문제해결의 精神과 方針으로 기존 사료와 학설에 대한 회의와 철저한 검토, 당시의 대세나 자연적 지리 상태 등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앞서 말한 이병도가 조선 후기의 실학적 연구자들의 문헌고증적인 방법을 계승한 것은 그의 사료 비판적태도 역시 그들로부터 어느정도 영향을 받았다는 것] 입니다.

  맺음말에서는 이병도 선생의 연구가 일차적으로 일본 연구자들의 연구에서 촉발되고, 또 그들과의 교류를 통하여 촉진되었고, 그 주 무기가 되었던 사료 비판의 태도나 문헌 고증도 일단 일본을 통한 근대 역사학적 방법론의 수용이라는 점에서 이해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조선 후기 실학자들을 중심으로 한 역사지리 역구도 그 배경이 되었다고 밝혔으며, 이병도 선생은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근대 역사학적 연구 방법을 바탕으로 하면서 일본 학계의 성과에 대한 비판은 물론 실학시대의 연구 결과와 방법론을 비판적으로 계승하였던 것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병도 선생의 연구에서 중요한 "제 사료와 학설에 대한 엄격한 비판.고증"이라는 점에서 "그의 새로운 학설은 떄로는 사료의 잘못을 바로 잡는 데에서 비롯되었는데, 과연 그 객관적인 기준을 어떻게 찾을 수 있겠는 가" 하는 문제는 남는다고 하는 것으로 발표는 마무리 되었습니다.
 
   조인성 교수님의 발표가 끝나고, 곧 이문기 교수님과의 토론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애초의 우려와는 달리 불령선인(?)들의 존재는 확인할 수 없었기에 토론은 상당히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게다가, 조인성 교수님의 발표가 이병도 선생에 대한 도발적인 문제제기에 있었던 것이 아니었기에 토론자인 이문기 교수님은 "토론자 역시 이러한 결론에 동의하며, 발표 자체에서 어떤 토론꺼리를 발견하기 어려웠다"라고 엄살에 가까운 운을 떼시며, 좌중의 웃음을 자아냈죠. (오른쪽에 계셨던 모 교수님 참 호탕하게 웃으시더군요;;) 그러나 바로 이어진 [오늘 발표회의 전체 주제는 '현대의 한국고대사학자이며, 이를 전체 주제로 설정한 이유는 선구적인 위치에 있는 선학들의 한국 고대사 연구가 후대에 끼친 영향이나 그 공과를 따져보는 데 있기 때문에, 논의의 활성화를 위해 본 발표와 약간 거리가 있을지도 모르는 몇 가지 질문을 던지겠다]라고 하셔서, 폭풍전야의 분위기 속에서 긴장하며 두 교수님의 토론을 듣게 되었습니다.
 

   토론자의 첫 질문은 "이병도의 한국고대사 연구는 .... 매우 방대한데, 한사군과 삼한의 역사 지리 문제만으로 논의를 한정한 이유가 무엇인지, 역사지리 연구에서 이병도 특유의 연구방법론이나 사관이 크게 드러난다고 보았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지만, 이병도 선생의 역사학의 특징에 대해 말씀해 주시길" 이었고, 이어 두번째 질문은 "이병도에 대한 종래의 평가는 "실증사학"이나 "문헌고증사학"의 대표적인 학자라고 하는 것인데, 발표자께서 발표문내에 실증사학이라는 용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였으며, 세번째 질문은 "발표자의 이병도의 한국고대사 연구가 후학들에게 끼친 영향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이병도의 한국 고대사 연구가 지닌 공과에 대해 발표자의 견해를 말씀해 주시길"이었고, 네번째 질문은 "우리 사회 일각에서 이병도를 식민사학의 한계를 탈피하지 못했다고 보는 시각이 엄연히 존재하는 데, 혹시 이병도의 한국고대사 연구에 그러한 혐의를 받을만한 요소가 있는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 학계가 이병도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노력을 적극적으로 펼쳐야 되는 것 아닌지"였습니다.

   토론자께서 처음에 운을 뗀 것과는 달리, 네 질문 모두 만만히 넘어갈 질문은 아니었고, 발표자의 답변이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진행자인 정운용교수님 진행아래, 발표자인 조인성 선생님은 첫번째, 두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묶어서 답을 하셨는 데,  "주제를 그렇게 잡은 것은 '강렬한 인상과 '이병도 선생의 역사관이 가장 잘 들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이병도 선생의 방법론에 대해 좀 더 다루어 보고 싶은 것은 아직도 많다"고 밝혔습니다. 또, 실증사학이라는 용어의 사용을 회피한 것은 고의적인 것이 아니고, 자신도 그렇게까지 발표문에서 '실증사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은 줄은 미처 인식못했다고 말하셔서 좌중의 웃음을 유도하시더군요. (;;;)

  그리고 세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먼저 이병도 선생의 공이라고 할 것 같으면, "그의 역사적 방법론은 현대 한국사학에 남겨진 큰 자산이고, 제도사, 사회사에 대해 후학들의 관심을 고취시킨 데 있지 않을까"싶다고, 과라고 하자면 "역사지리적 접근 자체로서의 문제인데, 일본의 시라도리 선생의 지적인 '이병도의 접근에는 인간이 보이지 않고, 지리적 문제 그것밖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같다'라는 점을 되새겨 봐야할 것"같다고 하셨는 데, 이에 대해서는 지식이 부족한 저로서는 특별히 뭐라고 판단내리기 어려운 것이었던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네번째 질문은, 질문의 민감성때문에 귀를 쫑긋히 세우고 들었는 데, 다른 분들의 반응은 어떠실지 모르겠으나, 저로서는 꽤나 놀라운 이야기들이었네요.
   먼저 이병도 선생의 생전에 당신 자신을 스스로 "민족 사학자"라고 규정하고 있었고, 그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인데, "歷史家의 遺香 : 斗溪李丙燾先生追念文集"에도 다루고 있는 이야기 중 이병도 선생께서 한 고려대 사학과 석사과정학생으로부터 직접 면전에서 "선생님은 스스로를 식민사학자라고 생각하십니까?" 라는 질문에 "나는 스스로를 민족사학자라고 생각하며, 일본의 관변사학적 역사접근에서 비판적 입장을 견지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라고 답변했다는 것입니다. (토론자인 이문기교수님, 발표자인 조인성교수님, 그리고 진행자인 정운용교수님이 이구동성으로 [그 석사 과정 학생은 좀 짱이었던듯] - 물론 이렇게 표현하신 건 아니지만 orz - 라고 ...) 그리고 이병도 선생에 대해 식민사학자라는 비판 중 [한사군을 한반도로 끌어들였다는 것]은 사실 고조선의 정치적 영역과 그 중심과 관련된 내용으로 이병도 선생 이전에 이미 실학자들의 역사적 접근에서부터 논의가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이 비판은 합당하지 않다고 답변하셨고, 또 [(국가가 성립되었다는)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신뢰할 수 없다]라는 이병도 선생의 견해에 대한 비판은 당시 이병도 선생의 입장은 아예 삼국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른바 "고대국가"라는 틀을 갖춘 것이 훨씬 후세였다는 것이므로, 이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습니다. 일부 비판자들은 삼국사기를 못 믿겠다는 것은 츠다의 주장을 맹종한 것이라고 하지만, 츠다의 이런 주장이 한국사를 폄하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보기는 힘들며, 만약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병도 선생이 그런 주장에 영합한 것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답변이었습니다.

   이은 토론에서 이병도 선생의 일제강점기 시절의 행적에 대한 발표자와 토론자 두분의 이야기가 오갔고, 이병도 선생도 한 인간으로서 공, 과 모두 존재할 수밖에 없는 데, 지금까지 우리 사학계에서 이병도 선생의 비판을 사학 자체의 비판으로 간주해 이병도 선생의 일부 미심쩍은 행적을 애써 회피하려고 했던 점이 있고, 이런 점은 이병도 선생에 대해 사학계 자체에서 객관적인 평가를 주저하게 한 요인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모 재야사학자는 25년전 이병도 선생의 고증사학적 태도에 분개해서 "자기 어머니의 자궁속에 다시 들어가 보고서야 '아 이 사람이 우리 어머니가 맞구나'라고 말할 사람'이라고 비난했다는 데, 학문적 방법론에 대해 견해는 각자 다르겠지만, 사학계에서 이병도 선생에 대한 비판이나 비난에 더 이상 침묵을 지켜서는 안되며 스스로 고인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해서, 학계 이외의 대중에서의 오해를 불식시켜야 한다는 요지의 이야기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그리고 약 1시간 30여분의 첫 주제의 발표와 토론이 끝나고 짧은 티 타임이 있었습니다. 

- 짧게 정리해 보려고 하였지만, 부득이 하게 후기를 나누서 쓰게 되었습니다. 다 본인의 부족함떄문이니 양해 바랍니다;;;


덧글

  • 耿君 2008/09/21 19:12 #

    역시 그렇군요. 잘 읽었습니다 ㅋ
  • 키치너 2008/09/21 19:26 #

    현장의 그 분위기를 글로 채 다 옮기지 못함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ㅁ;
  • ㄹㅇ 2008/09/21 22:03 # 삭제

    백조고길이 "인간이 없다"라는 좌빨스런 말을 하다니!
  • 키치너 2008/09/21 22:57 #

    하핫;; 그렇습니까? ;;;
  • 악질식민빠 2008/09/22 00:23 #

    잘 읽었습니다. 다음 편도 (두근두근...)
  • 키치너 2008/09/22 18:01 #

    사실 백미는 두계 선생 편이라 다음은 조금 재미가 없을 지도 ^^:;;
  • 유리 2008/09/22 01:10 #

    저 또한 고대사에 대해 교과서 수준으로 아는게 없는지라 =ㅁ=;; 이해(?)가 다 가지는 않지만
    정말 재미있었을듯.. (1)이 써져있으니 다음 편도 있겠군요. 계속 기대하겠습니다 ㅎㅎ
  • 키치너 2008/09/22 18:02 #

    다음 편도 노력해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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