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트레이버 1st 극장판 : 추억은 앨범 속에 남아야 했다. 애니메이션

  몇일 전 패트레이버 첫번째 극장판을 다시 보았다.
 
  패트레이버 OVA, TVA, 극장판 모두가 비슷한 느낌으로 남아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내 기억 속에 화려하게 떠오르던 것은 언제나 첫번째 극장판이었다. 극장판에서 비슷하게 보이는 미스테리적인 사건과, 그 추적, 그리고 몽환적인 분위기와 성경의 시편을 인용하여 연출한 신화적 인상의 혼합은 패트레이버 첫 극장판을 내게 불멸의 기억으로 만들어 놓는 데 충분했다.
   
   그 느낌이 가끔 마음을 스쳐갈 때면, 이미 퇴락해버린 옛 고성을 보는 듯한 아쉬움, 그리움, 안타까움이 겹쳐 난 언젠가 다시 조용히 곰곰히 뜯어보며 추억을 되돌아 보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기억 속에 박제된 '그 추억'이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나자, 난 기대했던 그 느낌들을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글쎄, 옛 무덤에서 조용히 잠자고 있던 유물을 발굴하여, 기쁜 마음으로 꺼내보니 순식간에 바스라져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는 가? 내가 처한 상황도 바로 그러했다.

   아, 물론 이 극장판이 사실은 형편없었는 데, 추억으로 남으면서 미화되었다는 걸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89년 작품이라고 하기엔 여전히 영상미가 훌륭했고 플롯도 짜임새 있었다. 하지만 난 여기에서 수년전 내 기억속에 남은 그 '느낌'을 다시 만끽할 수는 없었다. 

   안타깝다. 다시 보지 않았으면 내게 이 기억은 아련한 추억으로, 안타까움으로, 그리움으로 남아 마치 '타오르는 목마름'처럼 나를 고취시키는 원동력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이제 옛 어릴적 보물을 하나 또 잃어버린 사람으로서 슬프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덧글

  • 산왕 2008/09/23 02:28 #

    비슷한 경험을 자꾸 하면서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겠죠(라고 적으니 굉장히 슬퍼지는군요 orz)

    패트레이버1은 저도 아주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 키치너 2008/09/23 17:44 #

    확실히 그런 것 같습니다. 역시 추억은 추억으로만 간직해야 하려나요.. T.T
  • 위장효과 2008/09/23 09:47 #

    저같은 경우는 반대로 애니판이라든가 티비판하고 전혀 다른, 뭔가 이질적인 느낌으로 다가온 극장판인지라...지금도 일종의 트라우마처럼 남아있습니다-오시이 마모루 하는 짓거리가 다 그렇죠 뭐. 특히나 공각기동대는...
  • 키치너 2008/09/23 17:46 #

    OVA, 티비판과는 확실히 극장판 I, II는 느낌부터 다르죠.;; 그나마 극장판 I에서는 OVA적인 분위기가 약간은 남아있어서 아련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었는 데, 이번에 추억의 창문을 다 깨버린 모양입니다. orz
  • ZeX 2008/09/23 11:35 #

    저도 비슷한 경험 있습니다. 어렸을 때 tv에서 해준 에어리어 88...
    10년 넘게 지났는데도 그 감동을 못 잊어서 구해서 봤는데... 도저히 적응할 수가 없어서 2화까지만 보고 포기해버렸던 일이... (...)

    비교적 최근에 나온 tv판은 아예 보지도 않았군요 -_-a
  • 키치너 2008/09/23 17:48 #

    이런 느낌 저뿐만이 아니었군요. ^^;;
    - 반대로 예전에는 쳐다보지도 못했던 80년대 애니메이션을 모종의 계기로 보기 시작하니, 그땐 차마 못볼 것 같았던 장면들이 그래도 뭔가 따뜻한(-_-;;) 분위기로 다가오더군요. 뭐, 초시공요새 마크로스 TVA 라든가, 기동전사 건담 이라던가 말이죠;;
  • 비닐우산 2008/09/24 00:33 #

    저도 건담 극장판 2편을 다시 보고 똑같은 감정을 느껴서 3편은 그냥 안봤습니다. -_-;
    그냥 옛날 애니메이션은 명장면만 다시 보는게 좋은거 같습니다.
  • 키치너 2008/09/24 01:16 #

    정말 옛 추억이 더 이상 추억이 아니게 되는 상황은 괴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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