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인은 도이노음이오" 역사

(중략) 정사는 벌써 잠이 깊이 들었고 나는 방금 담뱃대를 물고 거나해서 누웠으려니 머리맡에서 별안간 발자국 소리가 났다. 나는 깜짝 놀라,
   "그 뉘기냐?"
 하고 소리를 치니,
   "도이노음이오."
한다. 음성이 아무래도 예사로 들리지 않아 나는 다시 고함을 쳤다.
    "이놈 누구냐?" 
    "소인은 도이노음이오."
    시대와 상방 하인들이 한목으로 놀라 일어나 뺨 치는 소리가 나고 등덜미를 쳐 밀어 문 밖으로 끌어간다. 이것은 갑군이 밤마다 일행의 숙소를 순찰하면서 사신 이하 사람 수효를 전부 헤어 가는데 이 시각은 언제나 밤이 깊어 함빡 잠이 들떄라 여태까지는 누가 다녀갔는지 몰랐던 것이다. 갑군이 자칭 '도이노음'이라고 한다는 것은 정말 포복절도할 일이다. 우리 나라 방언엔 오랑캐를 불러서 '되놈'이라고 한다. 갑군들은 해마다 사신 행차를 맞아 보내면서 우리 사람들에게 말을 배울 적에 '되'라고 부른 것이 아주 귀에 젖게 된 까닭이다.
- 열하일기 上, 박지원 씀, 리상호 옮김, 보리, 103P

    보통 한번 쯤은 들어봤을 열하일기를 시험을 보는 동안, 벗으로 삼고 읽었습니다. 연암 특유의 익살과 풍자, 그리고 비판의식이 가득한 글을 읽다보면, 빵 하고 터지는 구절이 한 둘이 아니었는 데, 시험 이틀 전 도서관 열람실에서 새벽 3시에 이 구절을 읽다가 웃음을 참느라 한번이면 '미친놈'이 될 뻔 했습니다. (...)

    '이름'이라는 주제를 다룬 많은 이야기 - 시에서도 많죠? 김춘수의 꽃이라던지 -가 많지만, 이 일화는 읽는 사람에게 웃음을 참지 못하게 하는 데, 그 이유는 상황의 역설적인 구성에 있죠.  본질적으로 비하의 의미를 가진 단어가 어떻게 해서 상대방에게는 비하의 의미가 아닌, 자신을 지칭하는 일반명사가 되었는 지..
    세계 각 언어에서도 단어의 수용과 교류에 대한 일화가 참 많지만, 누가 압니까. 중국 동북 지방의 언어학적 조사를 하다보면 '도이노음'이라는 단어가 그들의 언어에 슬며시 얼굴을 내 밀고 있을 지 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