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엉터리 나라입니다 : 독일과 전쟁문화 역사

독일 연방군의 전직 감찰관(*1)은 전역 후 다른 어떤 군인보다도 더 큰 자유를 느낀다면서 이런 말을 했다.
 "독일은 엉터리 나라입니다." (*2)

- 전쟁본능, 살림, 마틴 판 크레펠트 지음/이동훈 옮김, 459p

  전쟁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전사(戰史)에서 독일의 군이 남긴 족적(?)에 감탄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독일의 역사 중 근-현대의 프로이센(Preußen)와 현대의 독일제국(Deutsches Kaiserreich), 그리고 나치독일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독일군은 장병의 전투력은 뛰어나고 지휘관은 훌륭한 정예의 군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은 데, 실제 역사를 들여다 보면 알 수 있듯이, 독일군이 항상 그러했던 것은 아니며, 여전히 그러한 것도 아니라는 주장이 있다.
  전쟁본능의 저자 마틴 판 크레펠트는 "아무 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적용되는 전쟁 문화는 병사들의 질서를 잡고 단결력을 높이기는 커녕 효율성을 저해하고 패배의 원인이" 되며, "역으로 기존의 전쟁 문화가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의도적으로 격하되며 파괴되고 두 번 다시 재건되지 않은 경우에도 영혼 없는 기계가" 만들어진다고 말하며, 프로이센과 독일 연방군의 예를 들고 있다.

1. "프로이센 귀족은 절대 걷지 않는다!"
1760년 토르가우 전투에서 요한 폰 휠센 중장은 타고 있던 말이 총격을 받아 쓰러지고, 자신도 부상을 당해 다른 말에 탈 수 없게 되자 야포의 포신을 타고 전장으로 향했다.

- 전쟁본능, 살림, 마틴 판 크레펠트 지음/이동훈 옮김, 438p

2. 1806년 프로이센은 러시아와 동맹을 맺고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와 전쟁을 준비했다. 당시 프로이센의 군주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였다. 그는 1797년 왕위를 계승하고 1840년까지 재위했다. 소년 시절 그의 스승은 폰 셸렌 장군이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는 충실하고 의지가 굳었지만 속이 좁았고 내성적이며 젊고 아름다운 아내인 루이스 왕비에게 붙들려 사는 사람이었다. 1807년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와 저녁 식사를 한 나폴레옹은 그를 가리켜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가 군대의 모자, 단추, 가죽배낭에 대해서는 나폴레옹보다도 훨씬 뛰어난 식견을 가지고 대화를 하는 반면, 다른 주제에 대해서는 거의 말이 없다는 점을 알아차렸다. 당시 프로이센 군대의 장군 142명 중 80세를 넘긴 사람은 4명, 79세 13명, 그리고 뤼헬을 포함해 60세를 넘긴 사람은 62명이나 되었다. 심지어 연대장과 대대장 중에도 25퍼센트가 60세를 초과했다. 이러한 사람들은 믿음직한 낡은 부대였지만,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법이었다.

- 전쟁본능, 살림, 마틴 판 크레펠트 지음/이동훈 옮김, 438~439p

3. 1806년 10월 4일에 있었던 작은 사건으로 인해 그(브룬스비크 공작)가 40년 동안 평화로운 세계에서 전쟁 문화에만 집착해 온 결과 얼마나 고루해졌는지가 드러났다. 프리드리히 빌헬름은 에르푸르트에서 주요 지휘관 회의를 소집했다. 회의는 예상보다 길어졌고 밤 11시가 되어도 끝나지 않았다. 프로이센 군대에서는 매일 밤 11시가 되면 암구호를 바꿨다. 장교들이 밖에 모이자 왕은 창문을 통해 그들을 보고 있다가 브룬스비크에게 새 암구호를 전달하며 그들에게 알려주라고 했다. 브룬스비크 사령관은 밖으로 나갔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외부인이 회의당에 접근해 회의 내용을 엿듣는 것을 막는 임무를 띤 하사관 1명과 병사 4명이 제 위치에 있지 않았던 것이다.

  왕이 보는 가운데 이 늙은 원수는 주위를 돌아다니며 실책을 저지른 부하들을 마구 꾸짖었으나 그 다음에 뭘 해야 할지 몰랐다. 누군가가 건물 입구를 지키고 있는 두 보초를 회의실 앞으로 데려오자는 생각을 해냈으나 그래도 아직 병사 2명과 하사관 1명이 모자랐다. 다행히 마침 척탄병 대대 병력에게 지급할 빵을 실은 마차가 달려오고 있었다. 그 마차에 탄 하사관을 끌어내려 임시 보초로 세웠으나 그는 규정상 필요한 기병용 소총을 갖고 있지 않았다. 마차를 몰기 쉽게 하려고 소총을 마차에 두고 내린 것이었다. 이러한 명백한 규정 위반 상태에서 뭘 어떻게 해야 할까? 만약 그 하사관을 암구호를 엿듣지 못하게 지키는 임무에 투입한다면 이는 규정을 업신여기는 짓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그 하사관을 군기 위반죄로 처벌한다면 새로운 암구호를 전달할 수가 없다. 늙은 원수가 특별 명령을 내려 고르디오스의 매듭을 끊기 전까지는 모두 깜짝 놀라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야 새로운 암구호를 전달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광경을 목격한, 훗날 장군과 육군 장관을 지낸 헤르만 폰 보옌은 이렇게 말했다. 

"나중에 우리는 그런 사람의 지휘를 받아 나폴레옹과 싸우게 되었다." 

  며칠 후인 1806년 10월 14일, 예나-아워슈타트 전투에서 프로이센군은 오만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된다. 
(중략)
  수십 년간 구축한 전쟁 문화가 쓸모없다는 것이 드러나자 프로이센 군대는 신속히 분열되었다.
(중략)
  패배해 편재가 무너지고 지휘관도 없는 병사들, 한마디로 패잔병을 가리키는 독일어 versprengte는 이 사간에서 유래된 말이다. 질서가 회복되는 데는 수주~수개월이 걸렸다. 그동안 나폴레옹 휘하의 원수 장 란느는 이런 말을 남겼다.

"프로이센 군대는 너무 겁에 질려 프랑스인 한 사람만 나타나도 무기를 버릴 지경이었다."

  나폴레옹 황제도 그에 못지않은 경멸적인 언사를 구사했다. 대육군 공보 제22호에서 그가 쓴 표현은 한 편의 시에 가까웠다.

"프로이센 군대는 떠오르는 햇살을 받은 가을철 아침 안개처럼 사라졌다." 

- 전쟁본능, 살림, 마틴 판 크레펠트 지음/이동훈 옮김, 440~442p

  이렇게 나폴레옹에게 처절한 패배를 당하면서, 프로이센군은 변화하기 시작했으며, 적어도 위 저자가 비판한 장교의 자질 문제는 샤른호르스트에 제창한 근대적인 참모본부제도에 의해 개선되었다. 그러나 더 본질적인 병사들이 가진 전쟁문화엔 큰 변화가 없었고, 이는 현대에 이르러 독일국방군의 폐해인 절대적인 상명하복을 낳게 되었다 볼 수 있을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국방군은 전쟁을 수행하는 집단으로서의 능력은 훌륭했으나, 군국/전체주의라는 국가의 이념과 히틀러 1인으로 수렴되는 독재에 의한 전략적, 사회문화적 실패, 프로이센 시대로부터 내려온 엄격한 군기를 강조하는 상명하복 정신은 독일의 패배와 함꼐 끔찍한 전쟁범죄를 저지른 집단이라는 낙인을 독일국방군에게 안겨주었다. 결국 독일 국방군은 전쟁에서 패배한 후, 연합군과 소련군에 의해 해체되고 이후 분단된 독일의 두 국가인 독일민주공화국의 국가인민군(Nationale Volksarmee)과 독일연방공화국의 연방군(Bundeswehr)에 의해 그 역사와 존재 의의를 부정당하게 되었다.

  20세기 "두" 독일의 군대인 국가인민군과 연방군은 각각 새로운 군의 전통을 만들어 나가야 했는 데, 마틴 판 크레팔트에 따르면 두 군대 모두 전쟁 문화를 제대로 키워내지 못했다. 특히 통일 후 독일의 유일한 군대가 된 연방군은 더욱 그러했다.

1.  독일연방공화국의 군대인 독일 연방군은 창설 이후 국내외의 압력을 받아 과거의 전통을 철저히 부정했다. 이 절차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두 가지였다. 그 중 첫 번째는 모든 군인은 '군복을 입은 시민'이라는 개념이었다. 이러한 개념은 민병이 폐지된 이후 병사를 왕권, 그 다음은 국가를 위한 도구로 여기던 과거 역사에서는 그 유례를 찾기 힘든 것이었다. 또한 국가 내에서 군대가 오랫동안 점하던 특수한 위치와 지위, 권리가 없다는 점도 의미한다. 그리고 두 번째 개념은 더욱 혁신적인 '내적 지도력(Führung)'이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수많은 독일 병사들을 무수한 가혹 행위(자국 병사 15,000명에 대한 사형 집행도 포함해서)에 가담케 한 엄격한 전통적인 상명하복의 체계를 깨뜨리기 위한 것이었다.
 (중략)
 독일민주공화국에서와 마찬가지로 그 결과는 역설적이었다. 외부적으로만 놓고 보면 독일 연방군은 국가 인민군에 비해 독일연방공화국 그 자체와 마찬가지로 덜 독일적이고 덜 군국주의적이었다. 필드그레이색 제복과 거위걸음식 퍼레이드는 폐지되었고, 아무도 다시 부활시키려 들지 않았다. 미국식 군화와 헬멧, 전투복을 착용한 독일 연방군은 독일이 보유했던 어떤 군대보다도 덜 호전적이고 덜 딱딱해 보이는 외관을 갖추고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장교들이 입는 드레스 유니폼에서 가장 확연하게 나타났다. 승마 바지는 일자 바지로 바뀌었고, 장화는 신사용 구두, 튜닉은 셔츠와 민간인용 넥타이, 디너 재킷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의상은 어떻게 보면 지휘관을 가급적 웨이터로 보이게 하려고 만들어진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이런 옷을 입은 지휘관을 웨이터로 착각한 적도 있다.
(중략)

2. 다른 전통에 대해서는 뜨거운 논쟁이 있어 왔다. 어떤 때는 구 독일 국방군 장군의 생일을 축하하고, 초대해 강의를 시키는 것 등이 합법이었던 적도 있었고. 그런 일을 하다가는 호된 처벌을 받는 적도 있었다. 어떤 때는 제2차 세계대전 영웅들의 이름을 따서 부대 명, 기지 명, 막사 명 등을 짓는 것이 허용되다가 또 어떤 때는 그 이름들을 모두 없애버리기도 했다. 독일 내에서는 금지되는 것이 외국에서는 허용되며, 심지어는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 또한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 독일 내의 박물관에서는 독일 국방군의 군기, 군복, 부착물 등을 볼 수 없지만 외국의 박물관에는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1975년부터 1985년 사이에 미 국방부는 독일 국방군 지휘관들을 초청해 전쟁 게임을 벌여 그들의 경험을 배우고 활용하려 했다.
 (중략)
 이런 상황에서 독일 연방군이 따르고 받들 만한 가치 있는 역사적 전통이 점점 줄어드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이러한 과정은 여러 측면에서 진행되어 왔다. 우선 독일 연방군 장군 중에 좋은 장군과 나쁜 장군을 가르던 기준은 사라지고, 히틀러 예하에서 고급 지휘관을 지낸 사람이면 무조건 배척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낮은 계급의 사람들에게도 이런 경향은 확대되었다. 예를 들어 많은 수의 연합군 항공기를 격추하고 1942년 전사한 독일 공군의 에이스인 한스 요아힘 마르세유를 거론하는 것도 금지되었다. 그는 독실한 가톨릭 교도였고 나치 당원이 아니었음에도 말이다.

3. 처음에는 1933년부터 1945년 사이의 역사만 금지되었다. 그러나 1968년부터 점점 1933년 이전의 독일 군사사도 금지당하기 시작했다. 독일 기갑 부대의 아버지인 하인츠 구데리안이나 사막의 여우 에르빈 롬멜은 물론 한스 폰 제크트, 파울 폰 힌덴부르크, 에리히 루덴도르프, 알프레드 폰 슐리펜, 헬무트 폰 몰트케도 자취를 감추었다. 한때 조국을 위해 싸운 영웅으로 칭송받던 이들은 군국주의자, 반동분자, 제국주의자로 매도되었다. 오늘날 독일 연방군의 어느 막사를 가 봐도 이들의 이름이나 초상화는 찾아볼 수 없다. 더구나 독일연방공화국은 매우 대단한 반공 국가였으며 오늘날에도 그런 기조는 면면히 내려오고 있다. 따라서 독일민주공화국의 좌익 혁명적인 전통을 취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독일연방공화국의 상황은 독일민주공화국의 상황보다 더욱 좋지 않았다고도 볼 수 있다. 2007년 현재 그 결과는 명백하다. 1939년~1945년에 독일 국방군에 복무한 사람의 수는 약 1800만명이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이전 200년 동안 독일의 군대에 복무한 사람의 수는 추산조차 불가능하다. 이 많은 사람들 중에 현재 독일 군 당국의 인정을 받을 만한 가치를 지닌 행동을 한 사람은 1944년 7월 20일 히틀러 암살을 시도했던 사람들뿐이다. 불과 수백 명의 장교로 이루어진 이 집단이 독일군 전체를 대표한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더구나 더욱 모순적이게도 이 장교들은 대부분 자유 민주주의자나 정치적으로 올바른 좌익 평화주의자들이 아니었다. 이들은 보수적이고, 뼛속까지 철저한 프로이센-독일 민족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독일을 자신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체제인 1914년 이전, 심지어는 1871년 이전의 대단히 권위주의적인 체제로 회귀시키는 것이 목표였다. 루드비히 베크 장군, 솅크 폰 슈타우펜베르크 대령, 헤닝 폰 트레스코프 대령과 그들의 동료들이 현재 자신들의 이름이 어떤 의미로 쓰이고 있는지 알게 된다면 분명 세상에 태어난 것을 후회할 것이다.

4. 외국 군인들은 군사 교육을 받을 때 충분한 시간을 들여 자기 나라의 존재 이유, 그리고 그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쳐야 하는 이유를 생각한다. 그러나 독일 연방군 군인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외국 군인들이 국가관과 사생관이 대해 깨닫는 시간만큼이나 많은 시간을 할애해 나치 시절 독일이 행한 악행에 대해 토의하고, 경각심을 일깨우며, 그러한 만행을 절대 거듭해서는 안 된다고 다짐한다. 독일 연방군에는 수많은 군 기지가 있지만 그 기지에서 1813년 이전이나 1815년 이후의 역사를 기념하는 것들을 찾아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독일 연방군에서 1813년 이전은 족장 봉건주의, 군국주의, 권위주의 등 산업혁명 이전의 잘못된 가치관이 지배하던 시기이며, 1815년 이후는 앞서 말한 나쁜 요소들에 민족주의와 국가 사회주의까지 혼합돤 시기이기때문이다. 다른 나라의 군사 교육 기관과 비교해 볼 때 독일군 사관학교, 참모 대학, 기타 교육 기관들은 뭔가 공허하고, 황량하며, 너무나 기능적이고, 영혼이 없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거기에서 전시될 만한 가치를 지닌 것은 '해방전쟁'의 유산을 제외하면 독일 연방군 자신들의 역사에 관한 것뿐이다. 그러나 독일 연방군은 전쟁에 나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런 물건들이 흥분과 영감을 자아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중요한 것은 칠이 입혀진 쇳 조각, 나무 조각, 천 조각, 군복 등 물건이 아니다. 그 물건들이 상징하고 있는 행위인 것이다. 2003년 엘베 강을 따라 둑길을 건설한 독일 연방군의 행위는 찬사를 받을 만하지만, 이는 군사적 전통의 기반으로서는 너무나도 부족하다.

5.  끔찍한 역사적 배경을 감안한다면 이 모든 것은 완벽히 납득이 가능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조국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군대라면, 전쟁 문화를 갖춰야 한다. 그리고 독일 국내외에 있는 지오다노 같은 사람들이 유일하게 적합하다고 여기는 문화는 군대에 걸맞은 전쟁 문화가 될 수 없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된 지 60년 이상이 흘렀지만 의외로 나아진 것은 하나도 없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사람들 중에 현재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거의 없으며, 또한 냉전의 종식으로 독일 연방군의 입지는 약해졌다.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독일 연방군의 자기 반성은 더욱 철저해지고 있다. 독일 국내외의 많은 사람들은 독일이 자신들의 이익을 주장하려면 자신들의 과거와 끊임없이 맞서야, 즉 과거를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독일 연방군에게 이는 실로 어려운 일이다.

6. 내적 지도력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엄청난 규모의 논의가 오고갔지만, 그것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 군사 재판법과 그 수많은 조항, 조건, 자격 등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법학의 천재뿐이다. 내적 지도력으로 인해 독일군의 군기는 너무 느슨해졌고, 그 의미도 '제11계명: 다른 사람을 기분좋게 대하라' 정도로 퇴색되었다. '군복 입은 시민'이라는 개념 역시 여러모로 무시할 수 없는 결과를 이끌어내었다. 하층민 출신이 대부분인 징집병들은 군 복무를 마치 로또 복권에 떨어진 것처럼 재수없는 일로 여긴다. 상류층 자제등은 상대적으로 대체 복무를 할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장교를 포함한 직업 군인들 역시 자신들을 신기한 군복을 입고 조국을 위해 폭력을 행사하는 좀 특이한 직업 공무원쯤으로 여긴다. 그나마도 그런 개념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잘 모른 채 이론적으로만 알 뿐이다. 독일 연방군 내의 이런 묘한 분위기를 탐지해 낼 수 있는 것은 군국주의자나 극우주의자 뿐만이 아니다. 이러한 분위기는 비인격적이고 관료적인 절차, 정치적 올바름, 무조건적인 복종 등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것이다. 만약 사람들이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하기를 두려워하게 된다면 이러한 분위기는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7. 우익은 이러한 상황을 안 좋게 여기며, 이런 식으로 해서는 군대를 제대로 육성할 수 없고, 이런 상태에서 독일이 다시 전쟁을 벌일 경우 불행한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좌익도 현 상황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들이 보기에 독일의 전쟁 문화에는 과거의 유산이 너무 많다. 또한 그들은 어떠한 형태의 전쟁 문화도 반대하며, 모든 전쟁 문화가 폐지된 '정념 없는 군대(독일 연방군 창립자의 말이지만)'을 원한다. 독일 연방군은 다른 외국 병사들 못지않은 능력과 의지를 갖춘 장병들을 많아 보유하고 있지만, 그 중간에 껴 있다. 독일의 우방국들을 포함해 다른 여러 외국 군대에서는 이처럼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상황을 당연히 용납하지 못한다. 현역 군인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 걱정을 하고 있지만, 그 문제를 입에 올렸다가는 즉각 전역 조치될까 두려워 말도 제대로 못 꺼낸다

- 전쟁본능, 살림, 마틴 판 크레펠트 지음/이동훈 옮김, 452~459p
  
  독일연방공화국은 이전의 독일 역사에서의 전쟁 문화를 일소하는 데 성공했다. 현재 연방군은 나치독일의 국방군과도, 독일제국의 독일제국군과도 19세기의 프로이센군과도 다른 새로운 군대로 탄생했으며, 연방군 스스로도 자신들은 그들의 조상을 계승하지 않았다고 천명하고 있다. 

  글의 서두에 제시했던 퇴역 독일 장성은 같은 인터뷰에서 17세기 리슐리외 추기경이 창설한 프랑스군 연대의 퍼레이드에서 그들이 연대의 역사를 자랑스러워 하는 것을 보며 역사를 잊은 독일군에 대해 한탄하며, (EU의 중추인)독일이 존재하지 못한다면, 유럽도 존재하지 못할 것이며, 독일군 장병들은 스스로 독일군의 일원임을 자랑스럽게 여겨야 한다고 하며, 독일군의 현 상황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다. (*3)

  독일 연방군은 겉보기엔 훌륭한 무기를 갖은 정예강군으로 보이나 독일에게 다시금 안보상의 위기가 닥쳐왔을 때 그들의 조상만큼이나 군의 본연의 목적을 잘 달성할 수 있을까? 정치가 안정되고 과거처럼 유럽내에서의 대규모 분쟁이 터지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에서는 이런 우려는 큰 설득력을 갖지 않는 다 할 수 있겠으나 가장 평화로운 시기에 전쟁을 준비해야 하는 군의 존재의의 상 분명 독일 연방군의 모습은 어딘가 그림자가 드리워진 듯 보인다. 연방군의 현역 군인들과 독일 우익 정치 세력이 우려하는 것처럼 연방군의 전쟁 문화는 결코 훌륭하지도 성공적인 것 같지도 않다.

주 
*1 : Hans-H. von Sandrart, Ex-Nato-Oberbefehlshaber (前NATO 최고 사령관)
*2 : Interview - "Der Ex-Nato-Oberbefehlshaber und Inspekteur des Heeres Hans-H. von Sandrart über Auslandseinsätze und Patriotismus"(Freitag, 09.06.2006)
(JUNGE FREIHEIT - Wochenzeitung aus Berlin: "Abgesandte der Nation" - http://www.jungefreiheit.de/Single-News-Display-Archiv.525+M5f6f1e09790.0.html)
*3 : 상동, "Ihr seid deutsche Soldaten! Seid stolz darauf!"("You are German soldiers!" Be proud of it!")"Ohne Deutschland gäbe es Europa gar nicht"("Without Germany, Europe would not exist")

덧글

  • Real 2011/02/02 15:39 #

    좋은글 잘봤습니다. 몇 안되는 독일연방군 관련해서의 글이군요^^ 퇴역장성의 말이라 하지만 저는 좀 반대적 입장을 그에게 이야기하고싶습니다. 전통을 계승한다는 의미에서의 문제는 정치적으로 자칫 독일의 과거사 문제에 대한 해결을 장기화하는 문제가 되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는 1차대전이후 바이마르 공화국군에서도 나타나면서 나온 히틀러의 집권을 바이마르 공화국군의 군부가 이를 지지해서 구 제국군의 부활을 했다는 점의 군국주의화의 문제가 있는 독일의 전례를 본다면 두번이나 세계대전의 침략국이자 패전국으로서 이름을 남긴 독일의 새로운 군대가 다시 그러한 문제를 이야기할수 있을까요? 입장적으로 매우 난처한게 현실이라 봅니다.

    오늘날 일본 자위대가 준정규군이지만 구 일본군 계승에서의 문제가 아직도 일본이 주변국으로부터 신뢰받지 못한 문제를 키우고 있다는 점을 본다면 그렇습니다. 그것의 전통계승에 의해서 결국 국가의 문화가 과거사에대한 청산을 제대로 못하는 형태로 갔었던게 독일이 실제로 겪었고 일본이 지금 무관심이자 우익들에 의해서 그렇게 되고 잇다는 점을 본다면 과연 저는 이 퇴역장군의 논리의 독일의 현실이 맞을까라는 우려를 나타나게 됩니다.
  • Real 2011/02/02 15:44 #

    우려하는 바는 의무병역제에서 나타나는 사항의 문제이자 동시에 장기간의 정체된 평화속에 있는 현실에서의 문제라 봅니다. 한국군도 이와 같은 문제는 다르지 않는 점을 봐도 그러하기 때문이죠. 결국 독일연방군이 뭔가 승전의 형태에서 군대가 보여줄수 잇는 성공을 개척해내지 못하는 이상 저 우려는 계속될수 밖에 없다 봅니다.

    단순하게 전통을 계승하는 것에 지나치게 거부하는건 문제가 될수 있을겁니다. 위 퇴역장군은 그점을 잘 짚었다고 생각합니다. 아예 계승거부나 변혁을 갖어온 사람들을 부정한다는건 의미가 없기 때문이죠. 그러나 군인출신답게 관료주의적 형태의 입장(철저한 상하복명 문제라든지)에서 언급도 있어서 좀 그렇긴 하지만..

    사실 독일군의 전면전에 대한 실전능력 부재의 문제는 임무형 전술 관련해서의 서적에서도 우려나 걱정을 나타내는 경우도 있더군요. 하지만 반드시 전통계승만을 강조하여 얻어지는 사항은 아니라 봅니다. 독일의 어찌보면 과거사의 철저하의 청산과 이중성이 모순을 만들어서 크게 만든다면 그것이 문제가 될수 있겠지만요..

    퍼갈게욤..
  • 키치너 2011/02/02 16:04 #

    네. 확실히 1차 세계 대전, 2차 세계 대전을 모두 일으킨 독일군 퇴역 장성으로서 하기엔 조금 위험한 발언이긴 하죠. 하지만 모범적인 군대의 표본으로 상찬받고 있는 연방군이 실제론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있다니 하는 관점에서 외부인의 시각으로 보면 말씀하셨듯이 시사점이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아참, 그리고 이 포스팅을 하는 데에 주요 참고가 된 "전쟁본능"은 유태인인 전사학자인 마틴 반 크레펠트의 저작입니다. 독일에 대한 저자의 글도 상당히 흥미롭지만, 전반적으로 전쟁 문화 자체에 대한 서술이 담겨 있으니 꼭 독일전사에 관심이 있지 않더라도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 키치너 2011/02/02 16:10 #

    아참, 그리고 전 포스팅의 펌을 허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 죄송하지만 링크로 처리 부탁드립니다.
  • Real 2011/02/02 16:12 #

    http://shyne911.tistory.com/826

    여기에 올렸으니 보시고 안된다 하시면 지우겠습니다.
  • 들꽃향기 2011/02/02 17:44 #

    잘 보았습니다. ^^ 특히 1914년 이전의 권위주의적-군사엘리트 주도적 체제를 되살리려던 히틀러 암살계획의 참여자들이 민주공화국에서 역설적으로 기념될 전통으로 존재한다는 모순은 '적절한 꼬집기'인 것 같습니다. ㄷㄷ

    특히 본문에서 나타나는 "독일 국내외의 많은 사람들은 독일이 자신들의 이익을 주장하려면 자신들의 과거와 끊임없이 맞서야, 즉 과거를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독일 연방군에게 이는 실로 어려운 일이다."라는 말에 공감하며, 사실 오히려 히틀러 이외의 것으로 '도피'하려고 하면서 정면에 맞부딪치며 '극복'하려는 논의가 부재했던 것이 오히려 현재의 역설을 가져왔다는 생각도 드네요. ㄷㄷ

    그런 역설이 오히려 자신이 '군인으로서 어떤 태도를 취하고 어떤 행동을 해야하는가.'의 문제를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장병과 장교 모두가 '사고도 없고 이념도 없는' 혹은 "자신을 그저 군복입은 국가의 공무원 정도로 간주하는" 양상을 불러왔다는 점이 오히려 '전율'스럽기 그지 없네요. ㄷㄷ
  • 키치너 2011/02/02 21:55 #

    그만큼 독일연방공화국에서 자랑스럽게 계승할 "전쟁문화"를 찾기 어려웠던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비극은 1차,2차 대전을 거치며 독일에 있어서 군사문화 자체가 거부의 대상이 되면서 그들이 어떤 지향점이 올바른 것인지에대한 논의조차도 수면아래로 가라앉게 된 것이겠지요. 독일민주공화국과 독일연방공화국간의 대립 역시 군사문화에 대한 건전한 논의를 막아버렸을테죠.

    그리고 연방군의 탈군인(?)화는 냉전 종식으로 독일 내에서의 군대의 존재 의의 약화에 물려받은 전쟁문화의 부재 모두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 rumic71 2011/02/02 19:29 #

    독일연방에 4대 군사노선 강화가 필요해지는군요.
  • 키치너 2011/02/02 21:57 #

    하하; 카이저 빌헬름 2세를 환생시키는 것도 괜찮을 지도 모릅니다.
  • rumic71 2011/02/02 23:06 #

    뭐 1세든 2세든 있으나마나고, 진짜 환생이 필요한 인물은 비스마르크지만...
  • 키치너 2011/02/02 23:47 #

    아, 실수.. 프리드리히 빌헬름2세를 쓴다는 걸 카이저 빌헬름2세라고 달아뒀군요. ^^;

    북한의 4대 군사 노선 강화나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나 국민의 행복, 만족과는 관계없이 국가를 병영군사국가로 만들어버렸죠. 위 포스팅에서 계속 인용한 책의 저자가 비판한 것처럼 이는 바람직한 "전쟁문화"가 될 수 없을 것이고요.

    비스마르크는 성공했으나, 그의 성공은 거밋줄과 같은 외교/기만책에 의존함이 크기에 독일연방군의 문제에 대해 답이 되긴 힘들겠지요. ^^;
  • 키치너 2011/02/04 22:22 #

    모바일앱으로 댓글을 쓰다 gForce님의 댓글이 삭제되어버렸습니다 ㅠㅠ

    제 댓글을 다시 짧게 달자면, 전술적인 면에서 군의 전력은 gForce님이 언급하신 대로라고 생각하지만, 국가전략상에서 군대가 스스로 존재의의를 가지지 못한다면 결국 그것도 의미를 찾기 어려워지지 않나 생각합니다.
  • 키치너 2011/02/04 22:25 #

    (... 이글루스는 빨리 댓글 수정 기능을 좀 도입해줬으면 좋겠군요)
  • 푸른매 2011/02/06 22:33 #

    "As Creveld summarizes it, the German sodlier 'fought for the reasons men have always fought: because he felt himself a member of a well-integrated, well-led team whose structure, administration, and functioning were perceived to be.. equitable and just.'" (p.17)

    "Soldiers fight when the men next to them expect them to fight. Soldiers fight well when they are members of cohesive small groups and led by officers they trust; they fight poorly when the group lacks cohesion and the officers cannot inspire trust. Their generalized attitudes and political views--how they feel as individuals about soldiering, patriotism, or the war--seem much less important." (p.46)

    - Bureaucracy: What government agencies do and why they do it, James Q. Wilson.

    폿님하 댓글 백업입니다. ㅋ
  • 키치너 2011/02/06 23:39 #

    옙. 이것과 gforce님이 남기신 댓글이 일치합니다.
  • 암호 2011/07/09 17:30 #

    전 현직 국방장관이 독일 유학을 했다는데, 이걸 보면서 더욱 심각성이 느껴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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