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얼마나 많은 이들을 구해낼 수 있을까? 인턴일기

  어제. 그러니까 3월7일은 응급실 근무 2주차, 8번째 당직이었던 날이었다. 현재 근무하고 있는 병원 응급실은 오전 8시 출근, 다음날 오전 9~10시 퇴근(회진, 응급 환자 진료등으로 매일 다르다 -_-)인 시스템인데, 이 날은 심상치 않게 출근하자마자 소생실로 환자가 한 분이 들어왔다. 이미 이송 당시 의식은 없었고, 맥박도 약했던 분인데 소생실로 들어오자 마자 심박이 느껴지지 않아 CPR을 시행하다가 2시간정도 뒤에 사망하였고, 곧 이어 TA로 한분이 또 소생실로 들어오는 등 아침부터 정신없는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월요일이라는 요일적인 특성인지 경환자, 중환자 가릴 것 없이 쉴새없이 들어오는 환자들을 문진하고, 루틴잡을 하면서 시간이 지나는 줄도 모르고 있던 새, 한 환자가 처치실로 들어가고 있었다.

  원래 처치실은 외상환자들이 들어가는 구역인데, 이날은 워낙 많은 환자가 쏟아진 탓에 침상이 부족하여 처치실로 들어가게 되었는 데 간단히 내원이력을 보니 AML로 본원 OPD(외래) F/U 하던 환자로 이번엔 두통을 호소하여 내원한 분이었다. 처치실로 들어가는 걸 흘깃 보니 mental alert하고, AML로 항암화학치료를 받는 환자 치고는 병색이 완연해 보이지도 않아 응급환자는 아닌 것 같아 보였다. 이런 생각을 잠시 하며 마저 보던 환자의 문진을 끝내고 잠시 숨을 돌리려다가 뭔가 찜찜한 느낌에 처치실로 들어간 환자를 보러 갔다. 

  환자의 보호자는 부인과 아들. 평소 병원과 친숙(?)한 탓인지 크게 걱정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이번에도 잠깐 응급실에서 진통제, 수액치료 받다가 가겠거니 하던 이들의 표정을 보고 난 평소처럼 문진을 시작했다.

 "어떤 증상으로 오셨나요?" - 환자는 대답이 없다. 

 "XXX님? 오늘 어디가 불편하세요?" - 역시 대답이 없다. 

 환자의 부인이 한마디 한다. 

 "오늘 아침부터 머리가 아프다고 하더라구요."

 환자의 코에서 드르렁 소리. 코고는 소리인가? 암환자들은 쉽게 피로해지는 경향은 있기 때문에 잠깐 졸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보호자에게 얻을 수 있는 히스토리는 항상 한계가 있기 마련이기에 환자를 깨워 물어보기로 했다.

 "XXX님, 일어나 보세요. 지금 어디가 제일 불편하세요?" - 역시 반응이 없다.

 "XXX님이 평소 이렇게 낮에 자주 조시는 분인가요?" - 보호자는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오늘 머리가 아프다고 했으니 그냥 피곤한 게 아니겠냐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아까부터 느낌이 안 좋았는 데 스멀스멀 올라오는 이 기분은 불안한 느낌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뭔가 짚여지는 게 있어 환자의 눈꺼풀을 들어 안구를 보았다. 눈꺼풀을 들어올리자 마자 눈동자가 상하좌우로 흔들리다 순식간에 정중앙에 고정되는 게 보였다. Nystagmus인가..? 펜라이트를 들어 대광반사를 보았지만, 양안 모두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환자의 가슴을 꼬집고 환자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불러 보았지만 전혀 반응이 없었다. 이미 의식수준은 coma 상태로 내 선에서 볼 환자가 아니었다. 급히 ER 2년차 선생님께 알렸고, 역시 같은 의식 수준 평가를 했지만 결과는 동일. CT 실로 보내 응급 CT를 찍고 돌아온 환자는 이미 hemorrage가 진행되어 있었다. 결국 소생실로 들어온 환자는 소생실에 들어오자 마자 맥박이 사라졌고 CPR을 해 겨우 심박과 자가호흡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환자의 예후는 극히 불투명했다. 

  콜을 받고 내려온 NS 선생님에게 환자를 인계하는 것으로 나와 환자의 직접적인 컨택은 여기에서 끝났다. 이제 남은 일은 불과 몇분 사이에 벌어진 일로 경황 없어하는 보호자에게 각종 동의서를 받는 것. 내가 동의서를 받은 환자의 아들은 애써 의연해 했지만 환자의 부인, 누나들은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그럴만도 했다. 불과 5분 사이에 alert 하던 mental이 coma에 빠지고, 몇분 전까지 이야기하던 이가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고 있었으니 그 누구라 하더라도 의연하기는 어렵지 않았을 까.

 정말 찰나의 시간이었다. 그 시간에 내가, 아니 다른 의사가 이 환자를 구해낼 수 있었을 까? 시간이 조금 더 있었다면 가능했을 까? 물론 난 이 상황이 불가항력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씁쓸함과 함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의사 면허가 사람을 살리는 신의 손을 담보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은 상식적으로 누구든 다 알고 있지만, 환자 보호자들의 충격어린, 울부짖음은 하루가 좀 더 지난 지금도 내 머릿속에 짙게 깔려있다.



덧글

  • 2011/03/08 22:55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키치너 2011/03/08 23:17 #

    이런 일을 보고 나니, 조금은 무기력해졌습니다. 머릿속으로는 잘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눈 앞에서 벌어진 상황을 맞닥드리니, 인정할 수 밖에요..
  • 2011/03/08 23:20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키치너 2011/03/08 23:35 #

    하하;; 사실 뭐 힘든지 안 힘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힘들다는 게, 비교 대상이 있어야 할 터인데, ER이 첫턴이라 다른 과 인턴이 얼마나 편한지 힘든지 잘 모르니까요. ^^

    말씀대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맞는 거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다만, 덤벼보지도 않고 지레 내 손이 닿을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포기해버리면 안되겠지요.
  • 카이 2011/03/09 20:54 #

    하필이면 처음이 ER이라니......^^;;
    그래도 할 수 있는 일은 전부 다 하셨으니 하늘이 맡기는 수 밖에요,^^
  • 키치너 2011/03/10 20:48 #

    사실 그냥 소소한 넋두리입니다. ^^
  • あさぎり 2011/03/09 22:01 #

    이런 걸 보고 있으면 새삼 의사선생님들이 존경스러워집니다.
  • 키치너 2011/03/10 20:50 #

    적어도 수련기간 동안엔 보통 마음가짐으론 쉽지 않은 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몸도 힘들지도, 정신적 부담이 훨씬 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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