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 역사

2008/07/10   신구논쟁 : 신구논쟁의 시작 [8]
2008/06/25   6.25, 한국전쟁 [2]
2008/06/14   재밌는 이야기 [3]

신구논쟁 : 신구논쟁의 시작

  오랜만에 쓰는 진지한 시리즈 물입니다. (-_-;;)

   이분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 (...)

   바로 新舊論爭(프랑스어로는 la Querelle des Anciens et des Modernes)말입니다.

   오늘날의 유럽 역사에서는 이미 고대의 낡은 페이지로 접혀들어간 로마시대에서부터 이미 고대를 그들이 사는 '현대'와 구분하고자 했고, 시간이 갈수록 고대가 쌓여가자 위대했던 고대와 비참하고 허투루해보이는 '현대'를 비교해보려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특히 고대에서 로마에 의한 정치적 통일이 무너지고 마치 홉스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방불케 하는 초기 중세 시대를 지나자 사람들은 더욱 이런 사고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죠. - 물론 고대의 물질 문명과 제국의 추억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전승되었지만 고대의 정신 문명은 상당수가 멸실되거나 수도원의 서가에 갇히게 되었기 때문에 사실상 중세시대때는 고대와 그들이 사는 '현대'와의 비교 논쟁은 존재하기 어려웠으며 단지 고대의 아련한 향수만이 남아 있었다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그러나 이른바 암흑에 갇힌 중세가 지나가고 고대에 대한 재발견이 시작된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유럽인들은 고대에 대한 경탄을 함과 동시에 이제 그들의 '현대'가 더 이상 고대보다 비천한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1 이른바 고대 옹호론자와 근대 옹호론자*2들의 [신구논쟁,la Querelle des Anciens et des Modernes]이 시작된 것입니다.

  사실 신구논쟁이 문학계에서 일어난 논쟁이었으나, 그 시작은 근대 과학의 발전에 자극되었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특히 데카르트의 합리주의적 철학은 고전주의를 완성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으나, 그의 획기적인 자연과학적 방법 의식은 일부 프랑스 지식인들을 자극하여 '데카르트가 아리스토텔레스를 뛰어넘었다면, 우리 역시 호메로스를 뛰어넘었다'라고 하면서 고대인들에게 공격을 퍼부었던겁니다. 특히 이들은 고대신화가 아닌, 그리스도교적 담론에 바탕을 둔 데마레 드 소를랭의 '영웅시'를 옹호하였는 데, 이는 근대 옹호론자들이 당대의 반종교개혁적 조류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견해에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근대 옹호론자들의 매서운 공격에 고대 옹호론자들 역시 반격을 시도 하는 데, 니콜라 부알로가 고대인들을 옹호하며 -베르길리우스등의- 고대시의 전통을 옹호하는 '시학'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논쟁에 기름을 붓는 계기가 되어 그때부터 논쟁은 점입가경으로 치달아 개인적 인신공격이 난무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으니...

- 계속

*1 : 원래 고대 로마에서의 '고전적'이라는 개념은 2세기 경 아울루스 젤리우스의 <녹테스 아티케>에서 최초로 사용된 것에서 유래하는 데, 여기에서 '고전적(classicus)'는 로마 시민중 사회적으로 최상층에 위치한 계급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더욱이 이 개념은 '고전적 저술가'와 '비천한 저술가'라는 극명한 대립관계에 의해 강조되었던 것이지요. 즉, 고전적이라는 개념의 최초의 반의어는 '천박한(vulgar)'였다는 것입니다.

*2 당시인들은 근대가 아니라 '지금 시대'의 의미로 사용했겠지만, 학계에서 일반적으로 쓰는 용어이므로 그대로 차용했습니다.

참고자료및웹문서
* 무화과 나무의 북토피아 http://blog.aladdin.co.kr/booktopia
* 중세를 찾아서, 해나무, 자크르 고프 저, 최애리 옮김

by 키치너 | 2008/07/10 01:56 | 역사 | 트랙백 | 덧글(8)

6.25, 한국전쟁

  


   58년전, 이땅에서 포성이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동족상잔이라는 뜨거운 피가 산에서 흘러, 들판을 적시고, 강을 타고 내려가 바다에 이르는 아직도 우리들의 마음 한 구석에 씻어낼 수도, 치유되지도 않은 커다란 상처를 남기고 만 그 일이 이날이후로 3년하고도 2일동안 더 지속되었습니다.

   이땅의 사람들이 역사상 처음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이 뜨거운 전쟁은 많은 이들을 역사의 수레바퀴에 치이게 만들었습니다. 이 작은 땅에서 200만명의 사람들이 그들의 꿈을 강제로 포기당하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떠났습니다. 뛰어난 문필의 작가, 양심적인 정치인, 존경받는 교사, 영민한 학생, 존경받는 아버지, 사랑스러운 어머니, 형, 동생, 누나. 살아있었다면 이 땅에서 그들의 삶이 어떤 모습으로 펼쳐졌을 지 모를, 수 많은 가능성이 그 기회를 박탈당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 철조망으로 구분지어진 하나의 선을 남기고 그 전쟁은 끝났습니다. 승리도 패배도 없는 휴전.
  
   기억하고 계십니까? 이날을. 전쟁이라는 참화가 우리를 덮친 바로 이 날을.
   - 이 날이후, '우리'는 이땅의 가능성을 하나 잃어버렸습니다.

 

by 키치너 | 2008/06/25 22:29 | 역사 | 트랙백(1) | 덧글(2)

재밌는 이야기

   "인적자원에 대한 방대한 투자는 국가의 성장을 가속화시킬 뿐 아니라 노동 계급의 '중산계급화'를 촉진하여 도덕적이고 사회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클라크 커가 말했듯이, 이로써 "자유와 함께하는 중산 계급 민주주의가 ‥‥‥ 미래의 물결"이 될 것이다. (중략) 하지만 실제로는 반대의 현상이 일어났다. 고등 교육의 단계에서는 투자가 두 세배로 늘어났지만, 학업 성취도는 오히려 떨어졌다. (중략) 정규 교육을 받는 아이들 사이에서 범죄율이 가차없이 증가했다. (중략) 교육 기간과 봉급의 비례관계는 크게 감소되었다. 교육 기회가 균등하다고 해서 성인들 사이에 더 큰 평등이 이뤄진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교육 확대가 더 확실한 사회 안정을 가져다준 것도 아니었다. 사실은 그 반대였다. 이러한 현상은 조지프 슘페터가 이미 예견했던 일이다. 그는 1920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자본주의가 여러방법으로 자기 파괴를 향해 나아가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의 논문은 1942년에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Captipalism, Socialism, and Democracy』라는 책으로 출간되었다. 자본주의의 자기 파괴 경향 중 하나는 지식인 계층의 끝없는 확대다. 자본주의는 지식인 계층을 탄생시키고, 자유를 추구하는 체제의 속성에 따라 사회의 통제 권한은 지식인에게 흘러들어간다. 그러면 지식인들은 필연적으로 사회를 파괴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 

  - 모던 타임스II, 폴 존슨, 조윤정 역, 살림, 520~521p

    모처럼 생각할 거리가 늘어났다.
  

by 키치너 | 2008/06/14 02:03 | 역사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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