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1월 18일
회의는 나아가지 않고 춤을 출 뿐이다 : 빈 회의

"회의는 나아가지 않고 춤을 출 뿐이고... Le Congrès ne marche pas, il danse" 오스트리아의 원수를 지낸 리뉴공의 유명한 표현은 당시 빈 회의의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1814년 9월 빈에서 세계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대규모 회의가 열렸는 데, 인구 25만명의 빈에 9월 한달 동안 1만 6000여 명에 달하는 외지인이 몰려들게 된 것이죠. 20여년에 걸친 나폴레옹 전쟁을 마무리 짓는 평화회의였던 빈회의는 각 열강의 대표단들이 가족,친지, 그리고 그들의 정부(情婦)들까지 대동하였는 데, 의례 이런 대규모의 인파가 몰리는 곳에 나타나기 마련인 모험가, 떠돌이, 부랑자, 소매치기들까지 빈 시가지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회의를 주최한 오스트리아 은 연일 축제를 마련하느라 여념이 없었고, 호프부르크 궁과 쇤브룬 궁에서 열린 이런 축제들로 황실의 재정이 핍박을 받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위에서 빈회의에 대한 명언(?)을 남긴 리뉴공은 빈회의를 '군주들의 휴일'이라고도 했는 데, 그 역시 빈 회의 중 축제를 즐기다 80세를 일기로 세상을 뜨게 됩니다. 노령에도 불구하고 어떤 부인과 한밤중의 밀회를 즐기다가 그만 감기에 걸려 회복하지 못한 탓이었죠. 그는 자신의 장례식을 빈회의의 참석자들이 하나의 흥밋거리로 받아들여주면 기쁘겠다는 유머를 남겼는 데, 당시 빈 회의가 어떤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는 지 잘 보여주는 에피소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빈 회의에서 분위기 자체는 매우 즐겁고 흥겨운 '무도회'와도 같았지만, 참석자들이 단순히 춤만 추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바로 이 회의가 19세기를, 근대라는 시대를, 그리고 오늘날의 세계정치역학구조를 제시한 하나의 이정표였기때문이죠.
# by | 2009/01/18 00:27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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